죄악의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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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접시

입력
2020.10.15 15:00
수정
2020.10.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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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살아 있는 파충류로 그릇을 만든 르네상스 예술가 베르나르 팔리시



팔리시의 도자기, 16세기 (출처 Wikiwand)


접시에는 습기를 머금은 각종 수초들 사이사이에 작은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뱀과 도마뱀, 개구리 등의 생물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실제 동식물의 주형을 떠서 만든 이 접시는 연못이나 호수의 생태계와 같은 자연 세계의 축소판이다. 여기에 과일이나 요리를 담아 먹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입맛을 뚝 떨어트릴 이 끔찍한 접시를 아무도 사용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예가는 미각의 즐거움과 세속적 쾌락을 좇는 사람들에게 ‘지상의 식탐을 경계하라!’는 금욕적 메시지를 던지려고 한 것일까? 온갖 먹을거리와 맛집을 찾아 헤매고 먹방 프로그램이 판치는 요즘 세태에서는 씨도 안 먹힐 교훈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접시를 만든 사람은 16세기 프랑스의 독창적인 예술가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다. 그는 직접 연못, 호수, 동굴을 찾아다니며 뱀과 개구리를 산 채로 잡았다. 독뱀의 경우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아주 힘든 작업이었다. 수집한 생물들은 작업장의 항아리에 보관했다. 주물을 뜰 때마다 꺼내서 식초나 소변에 담근 후 기름기 있는 물질로 코팅을 했다. 그리고 실물 주형을 떠서 성형했고 화려한 색색의 유약을 발라 구웠다.


팔리시의 도자기, 1550년(출처 Wikipedia)


그런데 그는 왜 아름답고 우아한 도자기 대신 이런 거칠고 기괴한 접시를 만들었을까? 바야흐로 중세 1,000년간의 긴 터널을 통과하여 세속의 삶과 인간의 감정을 중시한 르네상스가 개화했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사람들은 그 통제 아래 있었다. 더구나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몇몇 도시들 외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는 아직도 신, 원죄, 지옥, 징벌과 같은 종교적 개념들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정신 세계의 중심이었다. 예술가들도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적인 고전 미술에서 한참 먼, 거칠고 어두운 중세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무거운 원죄 의식에 사로잡힌 그림,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채소들로 구성된 기괴한 초상화 같은 것들이 그 예들이다.

팔리시의 작품 역시 당시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었던 종교적 측면을 보여 준다. 서양 문화에서 뱀과 같은 파충류는 어둠과 죄악의 상징이다. 접시에 등장하는 달팽이, 개구리, 뱀, 도마뱀 등은 차갑고 음습한 은둔처에서 기어 나온 어둠의 자식들이다. 팔리시의 도자기는 파충류로 상징되는 악의 존재와 유혹에 빠져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원죄에 대한 암시, 그리고 미각의 쾌락과 육체적 욕망에 대한 경고 등 종교적, 금욕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팔리시의 접시 세부, 1550년(출처 Wikipedia)


중국 도자기에 매료된 팔리시는 도자기의 유약과 가마의 비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무려 16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온 정력을 쏟아부었다.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으며 전 재산을 탕진했고, 마지막 남은 가구와 집안의 마루까지 뜯어내 가마에 불을 때는 광기와 집착도 보였다고 한다. 끝내 중국 도자기의 흰색 유약의 비법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대신 러스틱 웨어(Rustic Ware: 투박한 시골풍의 그릇이란 뜻), 혹은 나중에 팔리시 웨어(Palissy Ware)라고 불리게 된 거칠고 투박한 형태의 독특한 세라믹 작품들을 창조했다. 오랜 기간의 치열한 연구 끝에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납 유약을 만들어낸 것이다. 녹색, 파랑, 갈색과 검정, 노랑색을 내기 위해 각각 구리의 금속 산화물을 첨가한 규산납, 코발트, 망간, 아연을 사용했다. 불투명성의 효과를 위해서는 약간의 유약에 주석을 섞어 썼다.

팔리시의 도자기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피부조직이 세밀하고 정교한 뱀이나 개구리, 물고기 등 여러 생물종의 극사실적인 형상과 섬세하고 풍부한 색상이 특징이다. 팔리시의 양식은 그의 사후에도 프랑스의 많은 추종자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졌다. 19세기에는 유럽 최고의 도자기 회사 민튼사의 ‘팔리시 웨어’로 부활되었다. 팔리시 웨어는 당시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호사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수집품 목록 중 하나다. 물론 온갖 눈에 거슬리는 생물체들로 점령된 이 무겁고 둔탁한 접시들은 실제로 음식을 담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식용 도자기 제품이다.

사실 기이한 물건에 대한 욕망은 고대 로마 황제 네로의 지하 궁전 ‘그로타’에서 발견된 기발하고 희한한 장식물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인류의 오랜 호사 취미와 관련이 있다. 네로의 지하 궁전에서 유래된 ‘그로타(grotta, 지하 동굴이란 의미의 이탈리아 말)’는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유럽 귀족들 사이에 유행한 그로테스크한 물건들에 대한 이색 취미를 뜻하게 되었다. 당시 왕과 부유한 귀족들은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수집해 사치스러운 개인 수장고에 보관했다. 이에 금속 세공인들도 생물체들의 실물 주형을 사용한 화려한 장식품을 만들어 후원자의 수장고를 채워주었다. 팔리시의 접시는 이런 역사 속 전통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팔리시는 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한 프랑스 여왕 카트린느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루브르 궁 근처에 작업장을 짓고 왕실을 위해 25년간 도자기를 제작했다. 또한, 고생물학, 동식물학, 지질학, 수리공학, 물리학, 철학, 의학, 농학, 연금술, 기상학 등 많은 분야에서 깊은 전문 지식을 갖고 있던 그는 공개 강연회를 자주 열었고 책도 출간했다. 르네상스 미술사학자 마틴 캠프에 의하면, 팔리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않은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졌고, 미켈란젤로를 뛰어넘는 치열한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이른바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와 같이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르네상스 만능인’이었지만, 역사는 그를 도예공으로만 기록했고 과학적 업적은 주목하지 않았다. 팔리시 말고도 이렇게 인정받지 못한 채 이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진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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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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