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유동성 공급 정책 영향으로 시중 통화량이 처음 3,1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풀린 돈의 대부분은 현금, 요구불예금 등 초단기 자금 형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코로나19 불확실성으로 경제주체들이 투자를 꺼리며 풀린 돈을 움켜만 쥐고 있는 셈이다.
3100조 넘어선 시중 통화량
15일 한국은행의 ‘8월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통상 시중 통화량 규모를 뜻하는 8월 광의통화(M2)는 3,101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9.5% 급증하며 처음으로 3,100조원을 웃돌았다.
M2에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사실상 현금이나 다름없는 상품을 아우른 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미만 정기예적금 등 입출금이 쉬운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특히 최근에는 M1 증가세가 M2보다 더 가파르다. 8월 M1은 1,095조2,000억원을 기록해 1년 전보다 무려 24%(약 212조원)나 급증했다. 통상 M1과 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은 현금화가 쉽기 때문에,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금융시장에 머물러 있는 자금이라는 뜻에서 '부동자금'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결국 역대 최대로 풀린 유동성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한 채 누군가의 주머니 속에만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에 따르면, 코로나19 재확산 영향으로 최근 소매판매 회복세가 둔화했고 설비투자도 7~8월 사이 감소세를 보였다. 자금의 유통 속도도 크게 떨어졌다. 광의통화를 한국은행이 직접 공급한 돈을 의미하는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는 8월 14.77을 기록해 여전히 지난 6월 15 이하로 떨어진 저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통화유통속도는 가장 최근 집계인 올해 2분기 기준 0.63으로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대출 받아 현금 쟁이는 가계
보유 주체별로는 기업의 보유자금이 줄어든 반면, 가계 자금이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8월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보유한 광의통화는 7월보다 5조3,000억원 늘었다. 이 역시 대개는 초단기자금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가 보유한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이 증가한 반면, 예금 금리 하락으로 인해 2년 미만 정기예적금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보유 자금은 같은 기준으로 오히려 1조6,000억원 줄었다.
가계의 보유 자금이 늘어난 것은 대출을 통한 신용 공급이 크게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8월 이래 가계는 빚을 내서 공모주 청약을 위주로 증권시장에 투자하거나 최근까지 가격이 상승한 주택 거래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대출로 충당했다. 하지만 확보한 여유자금을 보유하는 방식은 장기간 예금보다는 단기자금 위주로 자금을 저장하거나 아예 현금으로 보유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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