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욕망으로 돌고래는 바다가 아닌 좁은 수족관에서 죽어간다. '자연의 권리' 저자는 돌고래에게도 인간의 억압을 벗어나 자유로워질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좁은 수족관에 갇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간을 등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돌고래의 눈빛은 슬펐다.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법은 돌고래를 지켜주지 못했고 쇼는 멈추지 않고 있다.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자는 구호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현실엔 넘어야 할 벽이 여전히 많다. 그래서 더 이런 책들이 필요한 지 모르겠다. 최근 출간된 ‘자연의 권리’(교유서가)와 ‘활생’(위고)은 생태, 환경에 대한 우리의 낮은 인식을 한 단계 성장시킬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학대 당한 돌고래에게 인간을 고발할 권리를 부여하라.” ‘자연의 권리’의 주장은 도발적이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당연하다. 저자는 ‘비인간’ 동물과 자연, 생태계를 법적 인격체로 인정하고, 인간과 동일하게 강제력 있는 법적 권리를 부여할 때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공존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의 권리ㆍ데이비드 보이드 지음ㆍ이지원 옮김ㆍ교유서가 발행ㆍ304쪽ㆍ1만8,000원
동물학대를 처벌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법은 진작에 마련돼 있긴 하다. 문제는 이 법 역시 동물과 자연을 인간이 마음대로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보편적 재산’으로 여기고 있다는 거다.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다.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경제적 효용 가치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훼손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지구 환경 보전의 국제적 노력을 최초로 천명한 스톡홀름 선언조차 “세상 모든 것 가운데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인간우월주의를 못 박아 놓은 걸 보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셈이다.
책은 동물과 자연에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세계적 판례들을 소개하며, 변화는 시작됐다고 역설한다. 2016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동물원에서 외롭게 죽어가던 침팬지 세실리아의 '비인간 권리'를 인정해 야생의 친구들 곁으로 갈수 있도록 도왔고, 에콰도르에선 고속도로 건설로 훼손된 빌카밤바 강의 권리를 인정해 원상복구 시키란 판결이 나왔다. 천성산 도롱뇽부터 설악산 산양까지 한국 법원이 자연물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멸종됐던 늑대를 복원시키는 건, 생태계를 회복하고 나아가 인간을 살리는 길이다. 늑대 한마리가 인간을 구원할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두번째 책의 제목인 '활생'(活生,rewilding)은 한마디로 야생 동식물의 보전과 복원을 말한다. 국내에선 ‘재야생화’란 말로 더 많이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 영장류학자로 번역에 나선 김산하 박사는 “어떤 특정시기나 특정 생태계로의 복귀가 아니라 자연이 알아서 제 갈 길에 도달하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활생이란 단어를 택했다.
활생은 단순히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그 지역에서 수백년 전에 멸종된 종의 재도입을 주장한다. 효과는 극적이다.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멸종된 지 70년이 지난 늑대를 재도입하자, 작은 포유류의 개체수가 늘어났고 씨앗과 묘목의 생존률이 높아졌으며 물길마저 달라졌다. 단 한 종만 살렸을 뿐인데, 생태계 전체가 소생한 것이다.

활생ㆍ조지 몽비오 지음ㆍ김산하 옮김ㆍ위고 발행ㆍ512쪽ㆍ2만3,000원
사납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문명이 배척해왔던 최상위 포식자들의 활생도 매우 중요하다. 인도에서 독수리가 줄어들자 광견병에 걸린 인간들이 폭증했는데, 독수리 대신 감염된 가축 사체를 먹은 야생 개들이 인간에게 병을 옮기면서 탈이 났던 거다. 그동안은 독수리가 가축 전염병의 확산을 막아줬던 것. 또 최상위 포식자가 온전하게 갖춰진 생태계일수록 탄소 흡수 및 저장 능력이 높아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란 연구도 눈에 띈다.
저자는 20세기 환경 운동이 '침묵의 봄'을 경고했다면, 21세기엔 활생 운동으로 '소란한 여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한때 사라졌던 동물들이 살아 돌아와 자유롭게 군림하는 야생이 복원 될 때,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활생'도 도모할 수 있다. 눈 앞에 닥친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대재앙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늑대 한마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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