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도 어지간해선 헤매지 않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 지도앱에 그려진 GPS표시와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으니 말이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사람들은 지도를 펼치지 않고, 길을 물어보지 않는다. 길 찾기의 달인이 된 걸까. 아니, 정반대다. 인간은 점점 길을 잃어 가고 있다. 1960년대 성장한 할머니는 4㎞를 걸어가 친구를 만났지만, 할머니의 손자는 고작 100m 거리의 친구집만 오갈 뿐이다. 3세대 만에 행동반경이 30분의 1로 줄어든 건, 탐험가로서의 인간 본능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다. 책은 인간의 길 찾기 능력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지침서다. 길 찾기는 호모사피엔스가 최후의 승자로 살아 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식량의 위치와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떠나야 했고, 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공간을 기억하고, 주변 풍경을 살피고, 새로운 친구와 소통하며 인간은 진화해나갔다.
책은 뇌과학, 인류학 등 분야를 넘나들며 인간의 길 찾기 능력이 두뇌 발달, 생존 능력을 어떻게 강화시키는지, 길을 잃은 사람들이 왜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 가는 길 주변에 무엇이 있었고,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서사는 쪼그라들 수 밖에 없다. “인류의 진화를 멈추고 싶지 않다면 내비게이션을 끄고 지도를 보라.” 책의 살벌한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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