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숭숭이는 마시멜롱을 진짜 잡아먹으려 했을까... 편견을 깨트린 소통의 반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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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숭숭이는 마시멜롱을 진짜 잡아먹으려 했을까... 편견을 깨트린 소통의 반전 이야기

입력
2020.10.16 04:30
수정
2020.10.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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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하얗고 오동통한 마시멜롱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에서 시작된다. 사계절 제공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느 마을에 착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대부분 이 평화로움을 깨트리는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의 침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선량한 사람들의 공동체는 다양한 고난을 겪지만 결국 이 낯선 존재를 물리치고, 다시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게 된다.

아마도 이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꾸준히 만들어져 내려오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뼈대일 것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 보통 영웅의 이름을 붙이지만, 많은 이야기들에는 그 시대가 원하는, 혹은 기록한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의 승전 이야기에서는 장군을 도와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 특히 행주치마에 돌을 실어 나르고 손을 잡고 밤새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던 공동체 내 여성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이 이야기 속 영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작품이 만들어지고 공유된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는가는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롭고도 의미있는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이파라파 냐무냐무"라는 괴성이 들리면서 마시멜롱들은 혼돈에 빠진다. 사계절 제공


이지은 작가의 사랑스러운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바로 이 ‘공동체의 위기’ 계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야기는 하얗고 동글동글, 오동통한 귀여운 마시멜롱들이 뒹굴 뒹굴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어김없이 위기가 닥쳐왔다. 숲 저편에서 “이파라파 냐무냐무” 라는 괴성이 들리면서 땅이 울린다. 커다랗고 시커멓고 털이 숭숭 나고 목소리도 큰 털숭숭이가 내용을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면서 마시멜롱 마을의 평화를 위협했던 것이다.

“이파라파, 냐무냐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공포에 질린 마시멜롱들은 상황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우리 마시멜롱들을 냠냠 먹겠다는 말이야!” “이대로 냠냠 먹힐 수 없어요. 우리도 싸울 수 있어요” 그리고 많은 이야기에서 그랬듯 마시멜롱들은 함께 힘을 모아 털숭숭이를 공격한다. 그런데 털숭숭이는 과일을 모아서 던져도, 밧줄로 묶어도 끄떡 없다. 마시멜롱들은 어떻게 털숭숭이를 물리칠 수 있을까. 그때, 조용히 다른 의견을 내는 마시멜롱이 있다.


괴성의 주인공은 털숭숭이. 마시멜롱들이 힘을 모아 공격하지만, 털숭숭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를 과연 물리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들려준다. 사계절 제공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으면 흔한 전개방식대로, 그래서 용기있는 마시멜롱이 털숭숭이를 저격하고, 나머지 마시멜롱들이 힘을 합쳐 나쁜 털숭숭이를 몰아내는 결론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의 반전이자, 의미를 가지는 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잠깐, 레오 리오니의 걸작 그림책 '으뜸 헤엄이'를 살펴보자. 으뜸 헤엄이는 바닷속 물고기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검은 색의, 헤엄을 잘 치는 물고기였다. 그리고 바닷속 세계가 큰 물고기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으뜸 헤엄이는 작은 물고기들을 모아 큰 물고기를 물리친다.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이야기지만 판화로 찍어 만든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커다란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서 큰 물고기에 대항하는 장면, 그리고 검은 눈이 되어 물고기들을 이끌어나가는 으뜸헤엄이의 모습을 시대적 배경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과연 파시즘, 그리고 거대 권력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힘이 느껴져 감동이 다가온다.

그러나 2020년 '이파라파 냐무냐무'에서 마시멜롱들은 으뜸헤엄이의 물고기들처럼 판화로 표현된, 큰 물고기 모양의 부속을 이루는 익명의 존재가 아니다. 귀여운 마시멜롱들은 개성을 가진 캐릭터이자 작은 목소리들이며, 숫자가 많으면 거대한 적도 물리칠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숫자가 함께 모여 공격하기’ 는 이미 효과적인 문제해결방식이 아니다.

“저기요. 정말 털숭숭이가 우리를 냠냠 먹으려는 걸까요? 털숭숭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이파라파 냐무냐무ㆍ이지은 지음, 그림ㆍ사계절 발행ㆍ64쪽ㆍ1만5,000원


댓글 수, 조횟수, 좋아요, 싫어요 등 숫자의 힘으로 의견을 표현하고 힘을 모으는 데에 어느덧 시민 모두가 익숙해 진 듯 보이는 2020년은 으뜸헤엄이의 1963년과는 확실히 다른 시대이다. 우리는 나와 다른 낯선 대상에 대해 소통하고, 섬세하게 맥락을 읽고, 중재하는 리더쉽과 함께 힘을 모아 타인을 돕고 협력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바램을 '이파라파 냐무냐무'에서 읽을 수 있다. 그나저나, 이파라파 냐무냐무는 도대체 무슨 뜻이길래? 영상처럼 재미있게 연출된 그림책을 마시멜롱 친구와 함께 한 장 한 장 직접 따라가며 털숭숭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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