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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보다 중요한 건 체온이었다

입력
2020.10.14 16:00
수정
2020.10.14 17: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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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팩트체크(fact check, 사실 확인)'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어느 한 사람을 더 심란하게 만들고 말았다. 성경의 욥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요새 우리 사회에 팩트체크는 꽤 무게감 있는 말이다. 하지만 팩트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지는 잘 모르겠다.

욥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 덕에 하나님의 축복을 듬뿍 받고, 건강하게 그리고 넉넉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야말로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사업은 다 망하고 사랑스러운 아들딸들도 집이 무너져 죽고 말았다. 자신도 병에 걸려 앓아눕자, 욥은 도미노처럼 들이닥친 불운에 망연자실했다. 그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말하니, 유일하게 죽지 않은 아내의 핀잔은 그가 겪은 재앙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그때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도 신앙에는 일가견이 있던 자들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위로하려 했으나, 욥과 친구들 간에 그만 설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친구들이 ‘사람은 왜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 아주 친절하게 설교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신학으로 보아 탁월한 정답이었다. 지금 말로 하자면 빼어나게 팩트체크를 해주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교통사고를 당해 가족을 잃고 병실에 누워있는 친구를 찾아가, 겨울철 차량 관리의 중요성과 고속도로 주행 주의 사항에 대해서 조곤조곤히 알려주는 것과 같은 격이었다. 위로하려다 뺨 맞지 않을까?

욥이 친구들의 신학적 강론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의 이야기에 수긍하기보다는 딴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에게 ‘어서 내려오셔서 좀 만나자’는 것이다. 하나님께 원망도 어지간하게 쏟아부었다. 흥미롭게도 나중에 하나님은 신학적으로 옳은 말을 했던 친구들에게는 분노하셨다. 도리어 하나님께 다박다박 대들었던 욥에게는 옳다고 하셨다. 욥기가 전해 주는 종교적 지혜 하나. 신께 대들어도 된다.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것은 오히려 입 다물고 소통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이 욥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고는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욥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사실 욥은 친구들과 설전 가운데 하나님을 그만 무지막지한 폭력배로까지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으스러뜨리셨다. 내 목덜미를 잡고 내던져서, 나를 부스러뜨리셨다. 사정없이 내 허리를 뚫으시고, 내 내장을 땅에 쏟아 내신다. 나를 갈기갈기 찢고 또 찢으시려고 내게 달려드신다.”(욥기 16.12-14 요약). 다행히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주먹을 쓰진 않으셨다.

욥은 하나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는다. 무엇이 욥을 회복시킨 것일까? 원래 욥은 팩트가 궁금했다. 왜 자기가 그런 무고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러나 팩트체크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은 이미 친구들이 다 했던 내용이었다. 하나님께 다시 돌아선 이유에 대하여 욥은 이렇게 답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42.5). 예전에 귀로만 들었다는 것은 신에 대하여 잘 공부했다는 뜻이다. 이제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이론으로만 알던 하나님을 드디어 '만났다(encounter)'는 뜻이다. 욥기가 전해주는 종교적 지혜 둘. 신앙의 문제는 이성적 합리가 대답해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될 수 있다.

욥을 찾아간 친구들이 알량한 신학적 설교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아픈 욥의 손을 꼭 잡아 주었으면 어땠을까? 욥은 위로도 받고 다시 일어설 용기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도 사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이 꼭 팩트에서 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따뜻한 스킨십에 행복해한다.

오십 년을 살면서 유전자 확인 한 번도 하지 않은 부모이지만, 만나면 언제나 따뜻하다. 실수로 병원에서 뒤바뀐 자식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굳이 팩트체크를 하지는 않는다. 이미 받은 사랑에 맘이 넉넉해서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어쩌면 모르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굳이 애인의 과거 팩트를 다 알려하지 않는다. 팩트보다 소중한 것은 서로 나누는 체온이기 때문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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