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학대피해 장애인… "쉼터 못들어가 모텔 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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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학대피해 장애인… "쉼터 못들어가 모텔 가기도"

입력
2020.10.19 04:30
수정
2020.10.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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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학대 신고 매년 20%가량 증가하지만
시설부족ㆍ자격 안돼 매년 50~60건 거절
시도별 쉼터 정원 4~8명…"빛 좋은 개살구"


매년 장애인학대가 늘고 있지만 이들 피해자가 쉴 곳은 늘 마땅치 않다.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요양원과 심지어 모텔에 머무는 경우까지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적장애인 A(62)씨를 향한 남편의 손과 입은 그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3년 전부터 남편도 기력이 떨어져 신체적 폭력의 수위는 낮아졌다지만, 오히려 폭언과 이에 따르는 정신적 학대의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왔다. 그는 손에 닿는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며, 입에 차마 담기 힘든 말을 쏟았다. 결국 참다 못한 A씨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지난 9월 집을 뛰쳐나왔다. 정신 없이 지역 복지관으로 달려간 그는 다짜고짜 "더 이상 남편과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지닌 A씨를 확인한 복지관은 지체없이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A씨는 쉽사리 폭력의 굴레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받지 못했다.

현장 조사를 나온 기관 상담사들이 남편과 A씨의 빠른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학대피해장애인쉼터는 이미 정원이 차 입소가 불가했고, 학대피해노인쉼터에는 만 65세가 되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성폭력ㆍ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A씨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복지관은 기존에 A씨를 돌보던 요양보호사에게 이틀간 돌봄을 부탁했고, 다행히 근처 요양원에 자리가 나 그곳으로 향했다.

당시 A씨 사건에 투입됐던 한 상담원은 "쉼터 입소 자체가 어렵다 보니 갈 곳을 찾을 동안 피해자가 머물 곳이 마땅치 않다"며 "상담원이 자기 지인이나 주변 활동가에게 피해장애인 돌봄을 부탁하기도 하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모텔에 머물게 한다"고 토로했다.


시도별 쉼터 정원 턱없이 부족

장애인 학대피해 신고가 나날이 늘고 있지만, 막상 학대 사실을 신고해 긴급히 가해자와 분리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도 피해자가 폭력으로부터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대피해장애인쉼터 입소를 거절 당하는 사례가 매년 50~60건에 달하고, 일부는 결국 갈 곳을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18일 보건복지부의 '2019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학대피해 신고는 4,376건으로 전년 대비 19.6% 증가했다. 이 중 43.9%에 달하는 1,923건이 학대의심사례로 분류됐고, 945건은 실제 '학대사례'로 판정 받았다. 학대사례 판정을 받은 피해장애인의 65.9%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고, 96.4%는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장애인이었다.

문제는 학대피해가 신고 접수된 다음에 주로 발생한다. 장애인권리옹호기관에 장애인 학대신고가 접수되면, 기관은 피해장애인의 상황에 맞춰 응급조치를 취한다. 이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게 학대피해장애인쉼터다. 보건복지부가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학대피해장애인쉼터는 10월 현재 전국 12개 시도에 14개소가 설치돼 있다. 인천 광주 세종 경남 등 연내 4개 시도에 각 1개소씩 추가 설치되고, 전북에도 내년까지 설치가 예정돼 있어 2021년에는 17개 시도 모두에 최소 1개 소씩(경기도 2개소)이 마련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시도별 쉼터 정원이 4~8명으로 턱없이 적고 성별이 다른 피해장애인이 먼저 입소해 있으면 입소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지역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상담원은 "여성 피해장애인의 경우 성학대를 받다 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남자 피해장애인이 먼저 쉼터에 입소해 있으면 갈 수가 없다"며 "다른 지역 쉼터로 연계하려 해도 정원이 차 있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전적 행동이 심하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경우라면 예외없이 거절 당하기 일쑤다. 아동이나 노인, 여성 관련 비장애인 쉼터로 갈 수도 있지만 대개는 장애를 이유로 거절한다.


피해장애인 다수 '학대 발생지'로

이는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학대피해장애인쉼터에 총 118건을 의뢰했지만 이 중 51건(43.4%)은 입소를 거절당했다. 올해도 7월 말 기준 147건 중 61건(41.5%)은 거절되면서 학대피해 장애인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쉼터에 가지 못한 피해장애인들은 의료기관 또는 관련 보호시설에 머물러야 했다. 끝내 갈 곳을 찾지 못한 피해장애인들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친척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어렵게 쉼터에 입소한다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다. 쉼터에는 최대 6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데 이후 대책이 없어서다. 올해 7월 기준 학대피해장애인쉼터에 입소한 피해장애인의 58%는 3개월 미만으로 머물렀고, 6개월 만기를 채운 경우는 1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쉼터를 떠난 장애인의 69%가 원가정에 복귀하거나 시설에 입소했다. 지난해 '학대'로 판정받은 사례들의 학대 발생지 중 거주지가 32.8%, 장애인복지시설이 31.2%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학대 현장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학대피해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충분치 않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51명의 피해 장애인이 학대피해장애인쉼터에서 입소를 거절 당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쉼터 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퇴소한 피해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자립에 필수적 역할을 하는 주거제공과 학대 피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종합적ㆍ전문적 서비스 제공이 필수다. 김진우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직무대리(사회복지학전공)는 "정부가 계속 탈(脫)시설을 강조하는데도 쉼터 이후에 갈 곳이 없다는 건 정부 정책에 후속적, 세부적 집행계획이 없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된 탈시설을 이루려면 전문적 서비스 제공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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