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피해자가 낸 국가 상대 손배
정부 "학살 입증되지 않고 시효도 지나"
"저는 여덟 살에 한국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사실 인정입니다. 한국 정부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4월 청와대 분수 앞에서 응우옌티탄)
1968년 2월 국군 청룡부대의 공격으로 베트남 민간인 74명이 사망한 퐁니 마을의 비극. 당시 어머니와 남동생, 언니 등 가족을 잃고 자신은 총격으로 배에 총상을 입었던 퐁니 마을의 소녀, 지금은 이순(耳順)의 나이가 된 응우옌티탄(60)씨가 2015년부터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피해를 증언했던 것은 '한국정부의 사실 인정과 사과'를 듣고 싶어서였다.
한국에 품었던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기를 반복한 지 5년이 지나자, 그는 결국 법정 소송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소송을 낸 지 6개월 만에 열린 첫 재판에서도 원하는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조상민 판사는 12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첫 기일을 열었다.
원고 소송대리인은 “퐁니 마을은 사격 제한 구역이었는데도 한국군이 공격을 했다. 그 과정에서 비무장 민간인이 학살되고 사체가 불태워지는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응우옌티탄씨가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3,000만100원을 청구하는 한편, ‘무장 군인이 민간인을 살상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인권의 확인을 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소송대리인은 “학살 자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학살의 증거로 언론 보도와 같은 미검증 자료가 제출됐고, 미군과 남베트남 군인들이 작성한 감찰보고서 중 원고에 유리한 부분만 번역해 제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해도 교전 중 발생한 사고일 수도 있어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또 △1956년 남베트남과 맺은 군사실무 약정에 민간인 피해 보상에 관한 별도 규정이 있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되며 △소송을 낼 수 있는 기한(5년)도 지났다고 했다.
그러자 원고 측은 “당시 참전했던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을 증인으로 세워 학살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했다. 피고 측이 이날 낸 준비서면을 검토한 뒤 구체적으로 누구를 증인으로 세울지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감안해 다음 기일은 내년 1월 11일에 열기로 했다. 긴 기다림도 무색하게 재판은 그렇게 12분 만에 끝났다.
한국에 오지 못한 응우옌티탄씨는 재판 직후 화상 전화를 통해 “오늘을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데, 한국 정부가 많이 늦은 것 같아 섭섭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당사자인 제 몸에 학살의 피해가 남아 있다"며 "재판부가 부디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재판을 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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