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
하나의 문구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났다. 반대의사를 밝힌 청와대 국민청원엔 12일 현재 14만명이 동의했다. 회원수가 10만5,000명에 이르는 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달 22일과 이달 7일 여당 당사 앞에서 반대집회도 열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확정된 게 아니다. 오해가 있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여전히 지속 중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중개시장이 좀 더 선진화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해 있었다" 진화 나선 정부
13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달 1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19개 분야 블록체인 활용 실증’ 사업에 예산 133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를 예시로 들었다.
공인중개사 업계는 격분했다. 정부가 나서 공인중개사란 직업을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본 것이다. 지난달 22일 협회가 "공인중개사 생존권 말살정책, 반드시 저지하겠습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재까지도 1인 시위 등이 이어지고 있다.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한 발 물러섰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검토한 바 없다"고 했고, 기재부 역시 "예산안을 취합만 했을 뿐"이란 입장을 내놨다. 급기야 홍 부총리까지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 중 예시로 나온 것 중 하나였을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중개사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협회 관계자는 "예산까지 편성했다는 것은 이미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있다는 것"이라며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면 청와대가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향한 누적 불만 터져"
중개사들은 정부 주관 하에 해마다 2만~3만명씩의 전문 자격사(공인중개사)를 배출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중개사 없는 거래를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협회 관계자는 "지금도 '중개인 없이'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지만, 부동산 거래 중개업은 자격을 취득한 사람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정부도 중개업에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향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 규제로 거래절벽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지난 8월 국토부가 중개보수 요율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소식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이 '포화상태'인데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협회에 따르면 8월말 기준 개업 공인중개사 규모는 10만9,800명에 달하고, 중개사 시험 누적 합격자수는 40만명을 훌쩍 넘긴 상태다.
한 공인중개사는 "자격시험 합격자가 한 해 2만명 넘게 나온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며 "정부가 수급 조절은커녕 오히려 실업대책으로 활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직거래 능사 아니다" 시각도
사실 시장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직거래가 최선의 대안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 한 부동산학회 조사에 따르면 2018년 부동산 거래건수 가운데 공인중개사를 거친 것은 60% 정도였다. 나머지 40% 중엔 무등록업자들에 의한 불법거래가 적지 않았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국내 부동산 거래는 페이퍼워크(서류 작업)가 많고 복잡한 편인 데다 억 단위 거래가 많아 직거래가 말처럼 쉽지 않다"며 "인터넷으로 직거래 하려다 사기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전문 소양을 갖춘 자격사들이 시장을 더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싸늘한 여론… "시장 선진화 계기 삼아야"
하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기술 발전에 따른 구조적인 부동산거래 문화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윤수민 우리은행 책임연구원은 "직방, 다방 같은 부동산 서비스업체도 직거래를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혀 중개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며 "신기술 기반 서비스와 택시기사가 충돌했던 '타다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상승으로 중개수수료가 급등한 것도 소비자 불만의 주요 배경이다. 현행 부동산 중개보수 요율은 매매가 9억원, 전세 6억원을 넘기면 수수료가 두 배 가량 껑충 뛰는 구조다. 수년간 집값 급등으로 이 구간에 해당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10억원짜리 주택을 매매하면 900만원(수수료율 0.9%)을 중개업자에 내야 한다.
윤수민 연구원은 "해외에서도 온라인을 통한 부동산 직거래가 활성화된 것은 수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며 "향후 국내에서도 직거래에 대한 소비자 선호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에선 '아이바잉(iBuying)'처럼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는 온라인 부동산 거래가 대세로 자리잡는 추세다. 아이바잉은 매도자가 홈페이지에 매물을 등록하면 24시간 이내 가격이 제시되고, 해당 가격이 마음에 들면 계약이 체결되는 시스템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높은 것은 서비스 질이 기대에 못미치기 때문"이라며 "세무상담 등 프리미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전속중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시장을 선진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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