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 낳은 아이, 저처럼 자랄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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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낳은 아이, 저처럼 자랄까 무섭습니다

입력
2020.10.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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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10대 때 낳은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제 부모도 저를 10대 때 낳았습니다. 저는 조부모 밑에서 컸습니다. 부모 두 분은 각각 세 번씩 재혼했습니다. 조부모님은 저를 맡았지만 학대했습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할아버지는 걸핏하면 저와 할머니에게 폭언을 했습니다. 할머니를 때리기도 했고요. 어릴 적부터 양치를 제대로 못한 저는 이가 썩었고, 아침을 항상 과자를 때워 배가 자주 아팠습니다. 목욕도 제 때 못해 늘 지저분했고요. 엄마가 와서 절 구해주길 바랬는데 연락조차 닿지 않았고, 아버지는 간혹 다른 여자를 데려와 얼굴만 비추고 도망치듯 사라졌어요.

중학생 때 전 저와 같은 불우한 환경의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비행도 저질렀어요. 나이 차가 나는 사람들과 성적학대에 가까운 무분별한 성관계도 했습니다. 당시엔 그저 그들이 날 버릴까봐, 미워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고 저를 따뜻하게 대해 줄 것 같아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아이가 생겼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좋은 남편과 가정을 꾸리면서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모른 채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인지 저는 매일 불안하고 공허했어요. 성실한 남편은 저를 잘 돌봐줬지만 제 성장을 두려워했어요. 제가 대학에 원서를 내고,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부부관계에도 금이 갔고, 결국 이혼했습니다.

이혼 후 저는 하루 3시간도 못 자면서 홀로 아이를 돌보고,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무던히 애썼습니다. 육아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전문가 글도 꾸준히 찾아보면서 아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밝고 건강합니다. 아이의 생활습관에 대해선 엄격한 편이에요. 다섯 살인 아이의 양치를 꼬박꼬박 시키고, 매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요.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주말에만 주고, 인스턴트 음식도 되도록 먹이지 않아요.

문제는 아이가 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말을 안 들으면 자꾸 아이의 마음을 두고 억측을 하거나 제 과거가 떠올라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진다는 거예요. 아이가 어느날 떼를 쓰고 울 때면 ‘망한 육아’란 생각에서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부모의 관심도 사랑도 못 받아본 내가 그럼 그렇지 뭐, 내 아이도 똑같겠지’ 라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망망대해 한복판에 버려진 기분이 들고 답답한 벽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기분입니다. 아이는 잘 자라는데, 왜 전 아이가 저처럼 될 거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걸까요.

김영미(가명ㆍ24ㆍ회사원)


영미씨, 저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그것을 아이에게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당신을 아주 깊이 응원해주고 싶어요. 어렸을 적 받았던 상처와 고통을 아프다고 말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당신에게 내면의 힘이 있다는 증거예요. 하지만 인간인지라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을 때 느끼는 깊은 절망과 고통이 왜 없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육자가 자신을 키운 방식대로 자신의 아이를 키웁니다. 만3세 이전에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했던 경험은 기억으로 저장되고 이를 바탕으로 애착패턴을 형성하게 되는데 12개월 무렵부터 시작된 애착패턴은 만 3세 전후로 고정됩니다. 그리고 고정된 애착패턴은 이후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그대로 작동되면서 삶과 대인관계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부모가 매우 중요하지요. 부모와의 관계가 불편했다면 그 불편한 관계가 자식에게 대물림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그것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영미씨처럼요.

영미씨는 양육자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보호와 돌봄을 받질 못했어요.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입히고, 그리고 아팠을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주는 것들이죠. 좋은 옷을 입히는 게 아니라 춥지 않게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식사를 챙겨주는 것을 말해요. 당신에게 그 부분이 굉장히 큰 상처로 남았어요. 마치 배가 닻을 바닥에 내리듯 당신 안에 기본적인 보살핌의 부재에 따른 상처가 아주 단단하게 뿌리 박혀 있어요.

그래서 영미씨는 기본적인 보살핌에 굉장히 몰두해요. 아이에게 제대로 해줘야 한다는 데 집착해 아이에게 과도한 통제를 하고 있어요. 이 부분이 안 되면 당신의 해결되지 않은 나쁜 경험과 기억이, 심리가 활성화돼요. 그러면서 많은 문제가 생기죠.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불안해지고, 충동적으로 아이를 심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고, 아이가 당신에게 도전하는 것 같은 괘씸한 생각도 들게 되죠. 가뜩이나 당신 안에 기본적인 보살핌의 부재에 관한 문제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그게 건드려지면 그 순간 증폭돼 전부가 돼 버려요.

영미씨도 이런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놓치고 있는 것도 있어요. 당신은 기본적인 보살핌은 물론, 정서적 보호도 받지 못했어요. 양육자는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고, 힘들 땐 위로를 해줘야 해요. 저는 이걸 ‘정서적 밥’이라고 표현해요. 조부모는 사랑을 주기보다 되려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고, 부모는 당신을 방치했지요. 당신이 느꼈을 정서적 허기는 얼마나 컸을까요.

제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당신이 받지 못했던 기본적인 보살핌을 아이에게 제대로 해줘야 한다는 데 너무 몰두돼 반대로 정서적 밥을 주는 것,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에요.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은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잘 키우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아주 좋은 엄마입니다. 당신이 받았던 것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의도와 노력은 훌륭하지만 거의 집착 수준이 되어 강박적으로 너무나 많은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겪었던 고통을 겪지 않게 하려 하지만, 당신 스스로가 당신이 받은 영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어릴 적 받았던 상처의 시작을 알고 그 영향으로 인해 겪었던 당신의 지나온 과거의 모습, 당신의 성격, 문제해결방식, 현재의 삶, 아이와의 관계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부모에게 느꼈던 원망과 분노를 아이에게 쏟아내는 실수를 할 수 있어요.

영미씨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보다, 당신이 살아온 기억들로 인해 당신이 과도하게 당신과 아이를 통제하고, 그 틀에서 벗어났을 때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당신이 설정해놓은 틀 밖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만큼의 무게로 다뤄야 하는데 당신에게는 그 일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오고, 어렸을 적 나쁜 경험이 건드려져 감정적 고통을 겪고, 결국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무게로 당신을 지배하고 말아요.

그래서 아이가 조금만 벗어나도‘망한 육아’라 생각해요. 그 나이 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아요. 오늘 안 되면 내일 가르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조를 때 ‘절대로 안 된다’라고 하기 보다 “아이스크림 너무 맛있고 달콤하지, 엄마도 잘 알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는 안 좋아, 하지만 너무 먹고 싶다면 이번에는 조금만, 세 숟갈만 먹어보자. 그리고 다음에 또 먹자”라고 하면 어떨까요.

영미씨가 기본적인 보살핌에 몰두해 아이를 통제만 하면 아이 역시 그만큼의 힘으로 엄마에게 대항합니다. 당신이 먼저 힘을 빼고 편안하게 대해주면 아이도 편안하게 느낄 거예요.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오류를 바꿔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물론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기본적인 질서와 규칙을 지키도록 적절한 통제와 제재도 필요해요.

그러나 타인의 과도한 통제에 의해 움직이도록 하는 건 오히려 아이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편안한 존재여야 해요. 엄마를 너무 좋아하지만 생활에 있어 사사건건 불편함이 생기면 같이 있는 걸 힘들어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 나가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려면, 몹시 걱정되고 쉽지 않지만 타율에 의한 규칙과 질서를 꼭 지키도록 하고 못 지키면 규제하는 또 다른 규칙을 만드는 방식으로 지나치게 통제하는 걸 멈춰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영미씨, 당신은 당신의 어머니와 다른 사람이에요. 영미씨의 어머니는 당신을 방치했지만 당신은 이혼을 하고도 아이를 지켜주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당신의 부모와 출발부터 다르기 때문에 다다를 지점도 분명 다를 겁니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가 다른 사람이듯이 아이도 당신과 다른 사람이고, 아이의 인생은 당신과 다를 거예요.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당신이 있어 아이는 당신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아갈 테니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얘기는 당신이 받았던 상처의 시작은 당신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어린 시절 당신이 겪었던 고통과 상처는 절대로 당신의 탓이 아니랍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를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내려받기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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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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