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혁 키움 감독이 부임 첫해 정규시즌 종료 전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연합뉴스
“근데 순위가 왜 결정이 안 나죠.”
이강철 KT 감독이 팀 창단 최다인 72승을 경신한 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소감이었다. 현재 KT는 리그 전체 분위기와 팀 상황을 볼 때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매우 높다. 선수 시절 해태 왕조의 주역으로 수많은 우승 경험이 있는 이 감독이 이러한 흐름을 모를 리 없고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아직도 수많은 걱정과 고민에 잠을 설치고 있다는 사실이 한마디 말 속에 강하게 묻어났다. 그만큼 야구가 어렵다는 것이다.
야구 어렵다. 자주 듣는다. 그런데 정말 어렵다. 그래서 흔히들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야구는 그냥 던지고, 치고, 받고, 뛰면 되는 게 아닌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야구는 쉽지 않다. 살면서 ‘인생 성공했다’는 말을 편히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야구도 마찬가지다.
야구가 어려운 이유? 야구도 인생처럼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한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 더욱이 야구는 팀 스포츠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기 다르게 생기고, 또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승리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모이고 이어져 있다. 게다가 프로야구는 비즈니스가 또 다른 핵심 본질이기 때문에 훨씬 많은 사람이 과정에 더해진다. 그래서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우승’은 사람들이 야구로 모여 만드는 작은 세상의 기적과도 같다.

김창현(가운데) 키움 감독대행이 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NC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키움은 이날 손혁 감독이 자진 사퇴한 뒤 프로 경력이 전무한 35세 김창현 퀄리티컨트롤(QC) 코치를 감독대행직에 앉혔다. 키움 제공
손혁 감독이 2020시즌 잔여 12경기를 남기고 자진사퇴의 형식을 빌려 경질됐다. 일련의 상황에 대한 내부 사정과 진실은 모르겠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단,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야구, 사람들이 한다. 그래서 야구, 사람이 망친다. 그리고 그 반대의 이유도 역시 사람이다. 분명 야구에는 숫자가 있다. 효율적이고 올바른 관리와 운영을 위해서는 핵심이고 필수겠다. 수많은 팀의 지표를 제시하고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대개 올바른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들의 야구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사람의 가치로 존중되지 않는다. 그러한 구단에 팀의 가치가 있을 수 없다. 팀의 가치가 없으니 그들의 야구는 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들은 이길 수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야구의 신이 있다면 야구의 가치를 무너뜨린 그들에게 마지막에 웃을 자격을 줄 리가 없다.
야구는 결국 사람들이 한다. 왕조의 역사를 보면 그 안엔 사람들이 있었다. 숫자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숫자로 보이지 않는 힘이 더 중요하다. 이를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야구를 통해 사람으로 살아가는 도리를 배웠다. 야구와 팀,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이 지배하는 그들만의 야구를 정말 꺾고 싶었다. 절대 지면 안 된다고 다짐했고 노력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손혁 감독이 가을 축제를 앞두고 그렇게 가볍게 경질되는 날, 분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다 우리 잘못인 것을.
키움 히어로즈, 세상으로부터 사랑 받고 존경 받기에 충분히 훌륭한 선수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땀 방울의 가치가 빛나도록 진심으로 응원하고 박수 쳐주는 아름다운 팬들도 있다. 나는 유구무언이라도 이들의 야구마저 상처받고 폄하 돼서는 안 된다. 팀의 이름을 사고 파는 건 그들의 맘이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 팀의 가치, 야구의 가치는 돈으로 사고 파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SBS 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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