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원 감독. TCO(주)콘텐츠온 제공
신정원(46) 감독은 색깔이 뚜렷한 연출가다. 지나치게 뚜렷해 ‘신정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장르로 느껴질 정도다. 전국 2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시실리 2㎞’(2004)를 시작으로 ‘차우’(2009), ‘점쟁이들’(2012) 그리고 지난달 29일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까지 어느 작품 하나 평이한 작품이 없다.
그가 8년 만에 내놓은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신정원’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독특한지 다시 한번 보여주는 영화다. 언뜻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때로 너무 진지해서 코미디 영화 같지 않고, 때로 코미디보다 스릴러, 호러, SF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코미디라고 생각하며 만든 영화가 아니다”라며 “배우들에게도 코미디로 생각하지 말고 각자 처한 상황에 최대한 충실하게 연기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 감독의 영화가 웃음을 주는 건 주로 등장인물들이 처하는 황당한 상황이나 캐릭터의 엉뚱한 성격에서 나온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을 책임지는 외계인 전문가 닥터 장(양동근)도 지나치게 진지해서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특히 닥터 장이 전기에 감전된 뒤 내뱉는 엉뚱한 대사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요”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꼽는 최고의 웃음 포인트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최근 국내에서 유행하는 좀비를 대신해 웬만해선 죽지 않는 외계인 ‘언브레이커블’을 내세운 영화다. 남편 만길(김성오)의 외도 사실을 추적하다 그가 외계인이며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게 된 소희(이정현)가 고교 동창인 세라(서영희), 양선(이미도)와 함께 반격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중 한 장면. TCO(주)콘텐츠온 제공
시나리오 초안은 오래 전 장항준 감독이 썼다. “영화 ‘마누라죽이기’ 같은 치정극이자 소동극이었던 시나리오”를 3년 전 신 감독이 연출 제의를 받은 뒤 고쳐 썼다. 원래 버전은 ‘몇천만명 중 한명꼴로 죽지 않는 않는 인간이 있다’는 설정이었는데 이를 외계인으로 바꾸고 여성들이 연대해 나쁜 남자들을 응징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독특한 시나리오에 배우들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선 더했다. 어떻게 연기할지 명쾌하게 말해주지 않는 신 감독의 연출 방식 때문이었다. 심지어 연기가 끝난 뒤 ‘컷’을 외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명확하게 지침을 줄 수 없어서 대략의 설명만 해주고 ‘한번 해보라’라고 주문했어요. 레퍼런스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으니 배우들도 어려웠을 겁니다. 초반엔 아수라장이었죠. 일일이 설득하면서 갈 순 없다는 생각에 믿고 따라오라고 했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호흡이 맞고 질서가 생기더군요. 배우들이 촬영하면서 많이 불안해 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신 감독은 철저히 계산된 연출을 하기보다 현장의 즉흥성을 즐기는 편이다. 계획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배우의 숨겨진 면모를 캐릭터 안으로 끄집어내는 그만의 방식이다. 이 같은 연출을 위해 그는 “일부러 배우들과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고 했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독특한 작품이라는 점 때문인지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현재까지 해외 6개국에 판매됐는데 그 중 대만과 베트남에는 이달 중 개봉할 예정이다. .
데뷔한 지 벌써 16년. 신정원 감독은 어느새 중견 감독이 됐다. 나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그는 이전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끔 ‘시실리 2㎞’ 찍고 나서 얼마나 발전을 했나 생각합니다. 이제 재기발랄한 영화를 찍기보단 원숙해져야 할 나이잖아요. 이런 영화는 젊은 감독들이 찍어야 하는데... 그간 내 안에 쌓여온 게 있을 텐데, 좀 더 무겁고 진중한 영화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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