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통화 녹음되는 건가요. 인터뷰 할 수 없는데. 지금 커피 마셔야 해요. 2분입니다."
8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이 노벨위원회의 인터뷰 요청에 보인 첫 반응이다. 그는 "여긴 겨우 아침 7시밖에 안 됐는데 계속 전화가 울려 혼란스럽다"며 커피를 마셔야 하니 짧게 끝내 달라고 부탁했다.
위원회는 이날 노벨문학상에 글릭을 선정했다고 밝히며 "엄정한 아름다움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화시키는 확고한 시적 목소리"라고 치켜세웠다. 위원회는 수상자 발표 후 공식 트위터에 글릭과 나눈 3분 20초 가량의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글릭은 노벨문학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운을 떼며 "처음 든 생각은 '이제 친구가 없어지겠네'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선 "친구들이 대부분 작가들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다음엔 '아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면서 "처음 겪는 일이어서 너무 생경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글릭은 "노벨문학상 수상은 엄청난 영광"이라면서 "수상자 중엔 당연히 내가 존경하지 않는 분도 있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람도 떠올렸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 말고 버몬트에 있는 다른 집을 사고 싶었는데 '그래, 이제 새 집을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도 계속 전화가 울려댄다"며 당황스런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글릭의 이번 수상은 해외 언론이나 베팅 사이트에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여서 관심을 모은다. 그의 시집은 아직 국내에 한 편도 번역, 출간되지 않아 국내 독자들에게도 생경하다.
글릭은 “당신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처음 읽을 만한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위원회 관계자의 부탁에 "모든 시집이 서로 달라서 추천할 만한 작품이 없다"고 답하면서 "경멸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첫 시집('퍼스트본')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첫 시집 이후 작품은 관심을 가질 만한데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낸 '아베르노'나 '충실하고 고결한 밤'을 먼저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림원은 글릭의 작품 중 ‘아베르노(Averno)’를 지목하며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하 세계로 끌려가는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몽환적으로 해석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1968년 첫 시집 '퍼스트본(Firstborn)'을 낸 글릭은 이후 미국 대표 시인으로 활동했다. 1인칭 목소리를 내세운 독창적인 화법으로 죽음, 상실, 거절, 실패, 치유와 회복 등을 노래했다. “당신의 시들은 ‘직접 몸소 체험한 경험’의 가치를 강조한다”면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몸소 체험한 경험이 어느 정도로 중요하냐"고 물은 위원회 관계자의 질문에는 "분명 할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아침 7시에 답하기엔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문제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그런데 2분 지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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