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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K방역 뉴스로 본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

입력
2020.10.10 1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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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영국의 BBC는 우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해외 매체 중 하나다. 이들은 그동안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줄이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특파원 취재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했다.

서울에 파견된 BBC의 로라 비커 특파원이 지난 6월 5일 내보낸 뉴스가 대표적이다. BBC는 한국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가장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이뤄내고 있다며 입국자들의 방역 앱과 폐쇄회로(CC)TV, 휴대폰 기록 등을 통해 의심환자를 추적하며 긴급재난공지 문자로 사람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 내용 자체는 굉장히 공정했고 기술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유튜브에 올라온 같은 뉴스 영상에 붙은 댓글을 보면 한마디로 한국은 감시국가였다. ‘왜 정부가 국민을 추적하나’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면 안된다’는 등의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BBC뉴스는 비슷한 영상을 3주 전인 9월4일에도 공개했다. 한국이 첨단 IT기술을 활용해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을 추적하는 내용을 소개한 이 영상의 제목은 하필 ‘한국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추적자들(South Korea’s Covid detectives)'이었다. Detective의 사전적 의미는 탐정, 형사, 흥신소 직원 등이다. 좋게 생각하면 코로나19를 막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남의 뒤를 캐는 탐정과 흥신소 직원의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BBC는 우리 방역 당국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위치추적과 통화기록 확인 과정 등을 생생한 육성으로 전달됐다. 이 과정에서 불륜이 발견된 경우도 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이 영상 역시 지난 6월 보도와 비슷한 반응을 불렀다. 왠지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 같은 경찰국가, 감시국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BBC뉴스의 의도는 여전히 한국의 훌륭한 방역(K-방역)에 맞춰져 있지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의도와 달랐다.

과연 그렇다면 BBC뉴스 보도는 공정하지 못한 악의적 뉴스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뉴스를 본 사람들의 반응만 놓고 보면 K-방역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공정하지 못한 보도로 볼 수는 없다. BBC뉴스처럼 신문기사나 TV뉴스는 엄연히 행간의 영역이 존재한다. 즉 독자나 시청자가 해석하는 공간이다. 문제는 이 공간에 대해서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따질 수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시청자와 독자의 해석만으로 보도의 공정성을 운운해서도 안된다.



요즘 우리 사회는 공정의 프레임에 쌓여 있다. 사회적 저명 인사들의 특권 및 특혜 논란부터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들의 공정 경쟁 문제가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법’ 입법 예고 및 국정감사의 도마에까지 올랐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공정성의 관점에서 상법 개정안 입법 예고를 통해 가짜뉴스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적용한다는 내용을 최근 발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까지 확대한 상법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에 따른 오보로 피해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액의 5배내에서 언론사가 책임을 지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악의적 가짜뉴스를 솎아내는 것에 대해 이의가 없지만 과도한 법 집행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고의와 중과실의 기준도 애매한 상황에서 정권에 따라 이를 정책적 수단으로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준이 애매하면 칼자루를 쥔 사람이 휘두르기 나름이다.

보도에 존재하는 행간의 영역을 멋대로 해석해 애매한 기준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 언론은 본연의 기능을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에 따른 피해 방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아닌 민사 소송 등 다른 구제수단을 찾아야 한다. BBC뉴스의 K-방역 보도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각국의 정책당국자들에게는 효과적 방역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보도다. 이런 보도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했을 때 나올 수 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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