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도통 관심 없이 살았다. 응급실에서는 작업복 차림이었고 평소 편한 복장을 선호했다. 솔직히 옷으로 자신을 뽐낸다는 사실이 늘 부끄럽고 민망했다. 평범한 삼십대 후반의 남성이 대체로 그렇듯이, 옷장 안의 옷 몇 벌을 골라 계절에 맞게 입으며 살아왔다.
남성복의 정수는 역시 정장이다. 살아온 기조와 맞게 지금까지 두 벌의 정장만을 번갈아 입었다. 첫 번째는 대학 시절 아버지가 선물한 검은색 정장이었다. 이 정장으로 전문의가 될 때까지 모든 경조사에 예의를 갖춰 참석했다. 전문의가 되자 한 테일러 숍에서 치수를 재고 감색 정장을 맞췄다. 두 번째 정장으로 나는 방송과 강연, 경조사를 치렀다. 옷장에 단 두 벌만 있는 정장이란, 내겐 격식의 의미가 있을 뿐 쑥스럽고 잘 모르는 세계였다.
하지만 작가로 살아가며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얼마 전 한 정장 브랜드에서 인터뷰와 촬영 요청이 왔다. 나는 가볍게 수락했는데, 대가로 정장 한 벌을 맞춰준다고 했다. 당연히 옷이 생겨 좋았다. 대신 '채촌'을 하러 방문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채촌은 내게 낯선 단어였지만, 단순히 사이즈를 재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양복점은 번쩍거리는 정장이 걸려 있고 착용하라면 어려울 소품이 정렬된 고급스러운 장소였다. 본능적으로 어색한 느낌이라 얼른 사이즈를 재고 집에 갈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게 환대를 건넨 이십칠 년 경력의 테일러님은 여유가 넘쳤다. 그는 천천히 사담으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고, 내 직업과 취향, 성향을 파악하려 했다.
그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눈 뒤 영감을 받은 예술가처럼 젊고 생동감 있는 느낌을 주기로 했다고 하셨다. 코발트로 포인트를 준 붉은빛의 원단으로, 감각적인 디자인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놀랐다. 엇비슷한 검은색이나 감색 중에 선택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세부 사항도 많았다. 그는 하나하나 설명하며 내게 맞는 디자인을 찾아갔다.
드디어 사이즈를 잴 차례였다. 그는 거울 앞에 정자세로 서라고 했다. 단순히 치수를 잴 줄 알았지만, 그는 오랜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으로 내 몸을 보고 훑어갔다. 그는 몸을 꼼꼼히 점검하더니 오른쪽 어깨가 높고 왼쪽 팔이 굵으며 오른쪽 엉덩이가 조금 더 불거져 있다고 했다. 나 또한 몸을 보는 직업이었지만 내 몸을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다. 채촌이란 격식을 갖출 뿐 아니라 성향을 드러내며 몸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돌아온 나는 무심코 앉아 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로 오른팔로 작업하며 왼팔로 자세를 지탱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새롭게 감각한 사실이라 자세를 고쳐 앉아야 했다. 그리고 신비한 세계를 만난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썼다. SNS와 인터뷰했던 잡지에 글을 공개해 약간의 화제가 되었다. 대리 체험을 마친 기분이라거나 자신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나중에 테일러님의 연락을 받았다. "글을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동안 제 일을 글로 써주신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생경한 일을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도 있군요. 오랜 경력을 마무리 짓기로 했는데 마지막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의 세계를 놀랍게 바라보았듯이, 그도 나의 직업적 세계를 놀랍게 바라본 것이다. 우리가 각자 프로의 세계를 교환했던 순간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