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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논란, 이재명ㆍ조세연 모두 절반의 진실”

입력
2020.10.08 2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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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오의 직격]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이 지난 6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지역화폐는 전국 차원에서는 낭비적 요소가 있지만, 지역불균형 해소에는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왕나경 인턴기자.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이 지난 6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지역화폐는 전국 차원에서는 낭비적 요소가 있지만, 지역불균형 해소에는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왕나경 인턴기자.

국책연구기관이 발표한 논문이 정쟁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발표하자,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근거 없이 정부 정책을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고 맹비난하면서부터다. 지역화폐는 지역 내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한 일종의 상품권으로 지역 주민의 소비가 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조세연은 “지방자치단체 간에 지역화폐 발행 경쟁이 과열되면, 당초 도입 목표는 달성할 수 없고 발행 비용 등으로 전국적으로 한 해에 2,260억원의 예산이 낭비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경기도 산하 경기연구원은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지역화폐 결제액이 100만원 증가할 때 소상공인 매출액은 145만원 증가한다”고 반박한다. 재정 분야 전문가인 유승경(54)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을 만나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 물어봤다. 유 부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LG 경제연구원과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지역화폐, 지역 불균형 해소에 도움

_ 2016년 53개 지자체가 1,168억원 규모로 발행하던 지역화폐는 2018년 중앙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급증해 내년에는 231개 지자체가 15조원을 발행하게 될 만큼 성장했다. 이 시점에서 조세연이 제기한 문제는 검토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데.

“전국 차원에서 보면 조세연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역 간 불균형이 극심하다. 수도권만 보더라도 경기 주민이 서울에서 소비하는 금액이 서울 주민이 경기에서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경기도 입장에서는 전국적 효율성보다는 도내 경제 활성화가 더 중요하다. 서울과 경기 시장 규모가 각각 100이라고 하자. 시장이 통합되어 있을 때, 서울 상공인이 두 시장을 합친 200중에서 120을 점유한다면 경기 상공인은 80을 점유할 것이다. 이후 경기도가 지역화폐를 도입해, 자기 시장은 지키면서 서울 시장을 일부 가져와, 경기 상공인이 120을 가져오면, 서울 상공인은 80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때 경기도는 지역화폐 도입 비용 10을 사용해 결과적으로 경기는 110, 서울은 80의 시장을 점유한다. 이에 서울도 지역화폐를 도입해 서울과 경기가 각각 100씩을 차지했다면, 서울ㆍ경기 모두 10의 비용이 초래되며 결국 이익은 경기 90, 서울 90으로 균형을 잡게 될 것이다. 서울ㆍ경기 소상공인 전체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180으로 줄어들고, 서울 소상공인도 90으로 줄지만, 경기 소상공인은 80에서 90으로 10이 늘어난다. 결국 경기도의 지역화폐 도입은 서울이 어떤 선택을 하든 이익이다.”

_ 이재명 지사와 경기연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의미인가.

“이런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서울 경기 모두 지역화폐를 도입하지 않고, 서울이 이익을 15 정도 경기로 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 자발적으로 그런 결정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조세연은 지역화폐에 의한 시장 분절만을 지적하고 지역화폐가 지역간 소비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빠뜨렸다. 이 지사와 경기연도 지역화폐가 지닌 전국 차원에서의 문제점을 외면했다.”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이 6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지역화폐 논란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이 6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지역화폐 논란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지역화폐 비효율성 외면하면 안 돼

_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온누리상품권이 지역화폐보다 나은 대안이 아닌가.

“각 지자체의 지역화폐와 비교해 온누리상품권은 가맹점 관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온누리상품권이 지자체 발행 지역화폐와 경쟁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각 지자체가 담당하는 온누리상품권의 관리 부실은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또 상품권을 불법으로 현금화하는 ‘깡’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가맹점을 쉽게 늘리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그렇더라도 경기도에서만 31종의 지역화폐가 발행되며 각각 독자적 결제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점을 생각하면 이에 대한 비효율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있겠는가.”

_ 미국은 주별 사정에 맞춰 소비세율을 다르게 적용해 자기 지역 소상공인 보호 정책을 편다. 우리도 지자체에 조세 제도 운용 자율성을 늘려주는 것도 효율적 대안이 되지 않을까.

“미국의 소비세와 같은 성격의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는 국세라 직접 도입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서초구가 독자적으로 재산세 인하 방침을 밝히는 등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가 조세제도를 통해 경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앙 정부도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역 소상공인 지원정책 다양화해야

_ 지역화폐는 사용처가 제한된 현금 대체품일 뿐인데, 경기연 연구처럼 지역 소상공인 매출이 많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기연 조사 기간이 지역화폐가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2019년이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은 경기연도 인정하고 있다. 1만원짜리 상품권을 9,000원에 판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1,000원의 공돈이 생기는 셈이어서, 소비는 1,000원 이상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한 올해 조사 결과는 지난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날 것이다. ‘지역 화폐’라는 명칭 때문에 화폐가 어떤 특별한 마술을 부린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마술은 없다. 단지 지역 소상공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예산을 지역화폐를 통해 지출하는 것이다.”

_ 지역화폐가 현재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지역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란 뜻인가.

“지역화폐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인 동시에 취약계층에 대한 소득 지원의 매개체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중앙 정부가 지역화폐 지원을 계속 확대해, 올해 6,288억원에서 내년 1조522억까지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지역화폐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 계속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지역화폐 발행에 제한하지 말고, 지자체가 다른 지원 정책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_ 지역화폐가 자기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타지역 소상공인의 손실을 초래한다. 이런 불공정을 최소화하려면 ‘지역 소상공인’의 규정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같은 대기업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지만 대형 매장 입점 상인은 지역화폐 혜택에서 제외되고, 편의점은 혜택을 받는다.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결국 정치적으로 결정될 문제다. 어찌 보면 이는 지방자치제의 근본적 문제점이기도 하다. 경제학적으로 시장 분절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또 지역 차별같이 지방자치권의 강화가 전국적 차원의 민주주의적 조정 원칙과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지방자치 강화에 대한 요구나 타지역 기업 배제 주장은 정서적으로 상당히 호소력이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정서적 호소력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이끌리기 쉽다. 하지만 전체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역화폐 논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_ 이재명 경기지사와 조세연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분명한 건 지역화폐를 도입한다고 해서 시장 규모가 늘어나거나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화폐를 도입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들고, 소상공인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의 일부분이 지역화폐 발행과 관리 비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소득과 소비의 지역적 불균형을 교정하고 중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효과는 분명히 있다. 결국 소비자 선택권이 약간 줄어들고 관리비용 때문에 상공인 지원 예산이 일부분 줄어드는 대가로 계층 간, 지역 간 분배가 개선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비용과 편익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어떤 주장이 더 낫다고 평가할 방법은 없다. 특히 지역화폐 발행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손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지만, 지역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분명히 드러난다. 국가적 차원에서 낭비가 있더라도 지역 소상공인에게 적극적으로 환영 받는 정책이다. 투입되는 비용 효율성을 따져볼 수 있는 구체적 연구 결과가 나오거나, 더 나은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조세연 주장은 둘 다 절반의 진실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정리=변한나 사원

정영오 논설위원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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