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복스홀’이라는 브랜드는 단순히 오펠의 리배징 브랜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브랜드 고유의 독자적인 모델도 존재하지 않고 판매 시장 역시 ‘영국 시장’에 한정되어 있기 대문이다.
GM과 PSA 그룹의 빅딜을 통해 PSA 그룹으로, 그리고 PSA 그룹과 FCA 그룹의 합병을 통해 탄생한 ‘스텔란티스’ 그룹의 산하로 자리를 옮기게 된 복스홀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 보다 더욱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과연 복스홀은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다른 분야로 시작한 복스홀의 역사
자동차 시장에 있어 복스홀 브랜드의 출범은 19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복스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사업은 1857년에 시작된다. 알렉산더 윌슨(Alexander Wilson)은 ‘알렉스 윌슨 앤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선박용 엔진이나 펌프 등의 ‘부품’등을 제작하며 제조업을 시작했다.
알렉스 윌슨 앤 컴퍼니는 꾸준한 사업을 지속했고, 1897년에는 제철 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다채로운 경험을 쌓게 되었다. 실제 복스홀은 철강 관련 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각종 기계 부품에 대한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행보 덕에 복스홀을 ‘자동차 제작’에 대한 기반을 쌓게 되었다.
1903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복스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유럽의 여러 철강 및 기계, 제조 업체들이 그런 것처럼 복스홀 역시 자동차 생산에 대한 도전에 나선다. 1903년, 복스홀은 ‘복스홀 제철’ 브랜드로 복스홀 최초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복스홀의 첫 번째 자동차는 단 5마력에 불가한 단일 실린더 타입의 엔진을 탑재한 차량이었다. 브랜드의 첫 번째 모델이었던 만큼 성능이나 차량의 가치가 우수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브랜드의 시작’을 알리기엔 충분했다.
복스홀 모터스의 이름을 품다
복스홀은 브랜드 출범을 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1905년, 영국 루턴으로 헤드쿼터 및 생산시설을 옮겼고, 1907년에는 ‘복스홀 모터스’라는 사명을 앞세웠고, 본격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활동을 시작했다.
브랜드 출범과 함께 복스홀 모터스는 ‘프리미엄’ 그리고 ‘스포츠’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실제 1908년 ‘스코티시 내구 대회(Scottish Reliability Trial) 및 RAC 등 다양한 대회에 출전을 시작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실제 스코티시 내구 대회에 출전한 복스홀 Y-타입 Y1은 다른 차량보다 우수한 등판 능력을 제시하고, 평균 속도 및 주행거리 등에 있어서도 우수한 성과를 제시하며 ‘복스홀 브랜드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제시했다.
복스홀은 이를 기반으로 한 양산 모델, A09을 선보였고 많은 사랑을 받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량의 A09 및, D-타입, 및 스포츠 성향의 E-타입 등이 제시되어 보스홀 브랜드의 안정화를 이끄는 듯 했다.
GM에 품에 안긴 복스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소비자들은 이전과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복스홀이 추구하던 프리미엄 자동차들은 더이상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이에 대응하지 못한 복스홀은 시장에서 빠르게 외면 받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복스홀은 1925년, GM과 인수합병에 합의한다. 인수금액은 당시 화폐가치로 250만 달러로 적지않은 수치였지만 GM 내부에서는 경영 및 생산 상황이 좋지 못했던 복스홀 인수에 대해 그리 탐탁치 않은 여론이 많았다.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GM의 리더십은 복스홀 브랜드를 살리려는 확보한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GM은 5년 동안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복스홀 브랜드의 재건을 선언하고 곧바로 GM이 자랑하는 ‘글로벌 아키텍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복스홀은 ‘브랜드의 재건’을 이끌 수 있는 존재, 복스홀 ‘라이트 식스’와 ‘카데트’를 연이어 선보였고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라이트 식스는 현대적인 엔진은 물론 코치빌더를 위한 패키지도 제공되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여기에 1937년에는 복스홀 H-타입 10-4를 출시하며 대중적인 차량의 가치를 높였다. 특히 GM의 최신 기술은 물론이고 보다 합리적인 패키지, 그리고 우수한 효율성은 물론이고 공격적인 가격을 통해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만 이러한 행보를 막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어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고 처칠 전차 생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세계대전 이후 성공 가도를 이어간 복스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내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안정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다소 주춤거리는 것과 달리 복스홀은 GM의 지원 아래 빠른 안정화와 함께 다양한 신규 차량을 개발, 생산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전쟁 기간 동안 더욱 발전된 차량 및 제작 기술은 복스홀에게 큰 무기가 되었다. 비록 GM의 ‘생산 효율 강화’에 대한 정책으로 인해 다양한 차량을 생산할 수 없었지만 우수한 상품성 및 주행 성능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실제 복스홀은 L-타입 와이번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렇고, 이후에는 E-타입을 제시하며 더욱 넉넉하고 세련된 가치를 전해 ‘시대 발전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며 ‘기술의 발전’을 꾸준히 제시했다.
이어지는 P-타입은 벨록스, 크레스타 등으로 판매되며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일부 차량이 내식성이 약한 것을 지적 받았지만 호주, 남아프리카, 인도, 파키스탄 및 태국 등과 같이 ‘운전석이 오른쪽’에 위치한 시장에서 많은 수출 실적을 올리는 등 ‘복스홀의 성장’은 꾸준히 이어지게 되었다.
1960년대에도 복스홀 차량들의 내식성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 받긴 했으나 컴팩트 패밀리카 ‘복스홀 비바’의 성공으로 영국 내에서의 입지는 물론이고 오펠 브랜드를 통해 ‘카데트’로 판매되어 이후 유럽 내 GM의 주요 차량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달라지는 시장, 그리고 오펠과의 통합
1970년 등장한 HC 비바는 1970년대, 복스홀에게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 포드 코티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쉐베트와 카발리어 등이 연이어 등장하며 시장에서의 입지를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GM 리더십은 유럽 내에서 오펠과 복스홀로 나뉘어 있는 두 브랜드를 모두 운영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회사의 경영이나 차량 생산 등에서는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운영 정책을 앞세웠다.
이러한 행보는 자연스러웠다. 실제 GM은 1960년대에도 이미 오펠과 복스홀의 차량 및 생산에 있어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효율성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3년 영국이 EEC에 가입하게 되어 하나의 헤드쿼터로 운영하기에 충분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 시장에서 경험을 쌓아 올린 오펠은 복스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실제 1970년대 후반에는 포드와 리랜드를 추격할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렸고, 오펠은 복스홀의 스포츠 성향의 브랜드로 영국에 진출하게 되어 ‘시장에서의 우수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복스홀은 아스트라와 카발리어와 같은 대중적인 모델은 물론이고 카미라와 같은 대형 차량을 새롭게 선보이며 영국 내 시장에서 더욱 견고한 입지를 다졌다. 게다가 아스트라가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벨몬트 및 칼튼 등이 연이어 데뷔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게 되었다.
조금씩 저무는 그리핀 깃발
1990년대에도 복스홀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아스트라가 견고하게 판매를 이끌었고, 프론테라나 카발리어, 그리고 코르사 등이 등장하며 ‘포트폴리오의 확장성’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조금씩 줄어드는 수익성은 GM의 리더십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영국 내 생산 라인 축소라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1995년에는 복스홀의 모든 차량이 ‘오펠의 포트폴리오’와 완전히 동일하게 개편되며 ‘복스홀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도 점점 하락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도 복스홀 브랜드의 판매가 꾸준히 이어진 점은 분명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각종 조사 및 지표를 통해 브랜드 가치, 인지도 그리고 소비자 만족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 선명히 드러나 ‘리더십’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입지가 줄어드는 복스홀, 그리고 고립되는 오펠
21세기, 오펠과 복스홀은 로터스의 개발 지원을 받은 스피드스터와 V220을 선보이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브랜드의 주력 판매 차량인 아스트라와 코르사는 여전히 건실했고 시그넘, 자피라 등도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며 브랜드의 점유율은 유지되었다.
여기에 벡트라와 오메가, 그리고 메리바 등이 포트폴리오에서 삭제 되거나 새롭게 등장했고, 5세대 아스트라는 더욱 대담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통해 시장의 이목을 끄는 등 어쩌면 ‘평범하고 또 평범한’ 브랜드의 이상을 이어가게 되었다.
다만 복스홀의 매출 실적에 비해 생산 설비가 효율적이지 못하고, 오펠 역시 비슷하다는 평가가 GM 리더십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미국에서 시작된 대대적인 경제공항은 브랜드들을 위축 시키기에 충분히 강렬하고, 부담스러웠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실제 GM은 2009년, 복스홀을 오펠에서 분리시킨 후 파산 후 매각 수순을 밟기도 했었다. 이러한 결정인 이후 취소되었지만, GM은 이 때를 기준으로 유럽 시장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거두기 시작했다.
복스홀과 오펠은 다시 새로운 차량을 선보이고 또 시장에서의 나름대로의 성과를 올리긴 했지만 수익성 부분에서는 꾸준한 의구심이 따라 붙었다. 다행히 이런 과정에서 시티카 아담, 컴팩트 SUV 모카가 새롭게 등장,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새로운 ‘활력소’로 자지를 잡았다.
하지만 GM 리더십에서는 어느새 복스홀과 오펠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PSA 그룹, 그리고 스텔란티스에 안긴 복스홀
2017년 상반기, GM은 복스홀 브랜드를 오펠 브랜드와 패키지로 하여 매각에 나선다고 밝혔고, 이내 그 협상 대상자가 PSA 그룹이라는 것을 밝혔다.
PSA 그룹은 두 브랜드의 인수 합병을 통해 유럽 내 시장에서 르노 그룹을 따돌리고, 유럽 내 2위 자동차 그룹으로 도약할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인수에 대한 협의는 꽤나 오랜 시간이 소모되었고 2017년 9월이 되서야 행정적인 업무가 마무리되고 실질적인 인수의 방점이 찍혔다.
계약 직후 PSA 그룹이 오펠이 가진 기술력이 알려진 것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며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해당 이슈는 이내 마무리되고, 복스홀은 PSA 그룹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이를 통해 복스홀은 아담과 모카, 아스트라 등의 기존 모델들은 기존의 ‘GM 아키텍처’를 그대로 사용하고 차세대 모델부터 PSA 그룹의 기술을 기반으로 차량을 생산하게 되어 브랜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주하게 되었다.
참고로 현재 복스홀은 코르사와 아스트라, 인시그니아 등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그랜드랜드 X 및 크로스랜드 X 그리고 콤보 라이프로 이어지는 승용차 라인업과 경상용차 등을 판매하고 있다. 덧붙여 복스홀의 고성능 디비전 VXR은 PSA 그룹으로 인수되며 더이상 판매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편 복스홀과 오펠 브랜드를 인수한 PSA 그룹은 FCA 그룹과의 합병, 초거대 자동차 그룹 ‘스텔란티스’를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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