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호텔 천장의 무늬부터 떠오른다. 끙끙 앓던 며칠 동안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키면 천장이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았다. 아마도 그저 몇 가지 색을 칠한 벽이었을 텐데, 물에다 유성페인트를 떨어뜨리고 살짝 저은 것처럼 그 색들이 빙글빙글 돌아대니 온통 마블링 무늬 같았다. 열이 펄펄 나는데 몸 안 어딘가는 또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이불을 감았다. 관절 마디마다 찾아온 통증을 견디며 자다 깨다 보니 붉은 반점이 퍼져 있었다. 뎅기열 발진이 시작된 것이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면서 세상 모든 냄새가 메스꺼워졌다. 탈수증세가 있으니 뭐라도 마셔야 하는데, 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비위가 상했다.
처음엔 갑자기 추워져서 걸린 감기인 줄 알았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제일 높은 지대에 있는 카메론 하일랜드는 무더운 열대에서 숨통을 트여주는 고원의 휴양지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침, 푸른 융단처럼 펼쳐진 차밭을 스쳐오는 선선한 바람이라니. 텁텁한 열대야에 지쳐 얼음물이나 벌컥대던 도시 사람들은 20도가 채 안 되는 서늘한 공기를 즐기며 향긋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호사를 누린다. 영국식민지 시절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는 농장으로 개발할 때도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풍토병이 문제였다고 듣긴 했었다. 지명 역시 1885년 이곳을 탐험한 영국인 지질학자의 이름을 딴 것인데, 백 년 전만 해도 원시림이던 곳에 길을 내면서 목숨을 잃거나 병원 신세를 진 노동자가 많았다. 그렇게 첩첩 산중 정글 한가운데에 영국인들은 말레이시아 최대의 차 농장을 만들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갈 땐 한 발 한 발 천천히 움직여도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숙소의 2층계단이 이리 높은 줄 몰랐다. 열이 내리고 죽 한 그릇을 사서 입에 넣었을 때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건 정말 충격이었다. 이렇게 미각을 잃나 덜컥 겁도 났고, 씻을 때마다 수북하게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는 것도 우울했다. 대신 배운 것도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일회용 주사기까지 챙기던 조심성이 슬슬 사라졌던 시기였다. 날아다니는 모기를 내가 막을 순 없었겠지만 한번 더 모기 차단제를 바르고 모기장을 확인했더라면 이런 후회를 안 했을텐데… 뎅기열이 찾아온 건 딱 그 순간이었다. 더 큰 사고를 조심하라는 경고처럼 말이다.
코로나19만으로도 힘든데 동남아시아는 뎅기열까지 더해 최악의 상황이란 소식이다. 뎅기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는 낮 시간에 주택가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회사와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낮에 집에 머무는 이가 많으니 발생률도 올라갔다. 한정된 방역 자원에서 우선순위가 밀린 탓도 있었다. 미리 막는 백신이 없고 증상 완화 말고는 딱히 치료법이 없는 병이라 모기가 자랄 물 웅덩이를 없애는 게 유일한 예방책이다. 그러니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지게 하려고 집 안에 모기의 서식지를 방치하면 엄한 벌금을 부과하는 나라도 있다.
슬프지만 앞으로도 인류와 야생동물의 생활 경계가 흐려지면서 생겨날 전염병이 많다는 게 과학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지난 세월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느슨해졌던 내 안전의식의 틈을 재빠르게 파고든 뎅기열처럼 코로나19도 더 큰 환경 위기에 대비하라는 사전 경고가 아닐까 싶다. 모두 다 같은 맘으로 세상을 한 번 더 살피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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