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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판 산성이 답답해도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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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판 산성이 답답해도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입력
2020.10.08 15:56
수정
2020.10.08 17:50
16면
0 0

장재진 기자, 경기필 리허설 현장을 가다

8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정나라 부지휘자가 방역을 위해 설치된 아크릴판 안에서 단원들을 지휘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8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정나라 부지휘자가 방역을 위해 설치된 아크릴판 안에서 단원들을 지휘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72번째 마디에서 호른이 조금만 더 짧게 가도 될까요?" "이 대목에서는 세컨드(Second) 바이올린이 주저하지 말고 용기 있게 치고 나오면 좋겠어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ㆍ각 음을 명확하게 연주)이 좀 더 분명했으면 합니다."

8일 오전 경기 수원 팔달로의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연주가 이어졌다. 정나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가 단원 30여명을 쉴 새 없이 조율하고 있었다.

제2바이올린 파트 맨 끝자리에서 리허설을 참관한 기자의 눈에도 단원들의 집중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휘봉을 따라 현악기 주자들은 사공의 노처럼 일사불란하게 활을 그었다. 틈틈이 악보 위에 활의 방향과 셈여림을 표시해나갔다. 연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리허설에 참가한 호른, 오보에 연주자들의 양 옆과 전방에는 커다란 아크릴판이 세워져 비말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리허설에 참가한 호른, 오보에 연주자들의 양 옆과 전방에는 커다란 아크릴판이 세워져 비말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이런 집중도는 이 리허설이 공연 하루 전 진행된 최종 리허설이어서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미루다 미루다 성사된, 참으로 귀하디 귀한 공연이기도 해서다. 연주자는 물론, 관객들도 연주 현장의 느낌이 그리웠을 터. 경기필은 9일 경기아트센터, 10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이 곡 외에도 그리그의 홀베르그 모음곡, 하이든 교향곡 104번(런던) 등을 선보인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자로 나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함박웃음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공연 취소 때문에 4개월 만에 오르는 무대라 떨려요"라더니 능숙한, 실수 하나 없는 깔끔한 연주를 선보였다. 악단과 솔리스트는 한 시간 동안 수차례 연주를 반복해가며 입체적인 합주(Tutti)를 만들어냈다. 터키풍 춤곡 분위기가 매혹적인 3악장까지, 모든 연습이 끝났을 때 모두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리허설에 참가한 현악기 연주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연습에 임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리허설에 참가한 현악기 연주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연습에 임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코로나19 시대는 리허설 풍경도 바꿨다. 예방 차원에서 지휘자를 둘러싼 아크릴판은 무려 5개나 설치됐다. 연습 때는 단원들에게 일일이 말로 지시해야 하고, 실제 공연 때는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정적으로 지휘해야 하는 지휘자의 특성을 감안하면 마스크를 쓰게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지휘자 주변에 아크릴판 산성을 쌓은 셈.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야 하기에 '비말' 위험이 큰 관악기 연주자들도 마찬가지. 호른과 오보에 연주자들은 커다란 아크릴판에 둘러싸였다. 이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지휘자야 아크릴판 너머로 보이면 그만이지만, 관악기 연주자에겐 장애물이어서다.

이형근 경기필 오보에 수석은 "아크릴판에 내가 연주한 소리가 반사되면서 동료들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협주에 지장이 가고, 객석으로 뻗어 나가는 음질도 아무래도 예전만 못하다"고 걱정했다.

정하나 악장은 "만에 하나 확진자가 생기면 모든 연주가 중단되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하다"며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작품 규모를 줄이다 보니 튜바, 트럼본, 하프 등 대규모 편성 때 필요한 동료들이 아예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8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경기필 단원들이 정기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연습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8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경기필 단원들이 정기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연습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불편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다. 다소 어려운 환경이라도 안전하게 관객을 만난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정나라 부지휘자는 "물론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왔지만, 요즘은 문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무슨 곡을 어떻게 하느냐에 앞서 일단 연주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수원=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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