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라마코리아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한국일보>
대학시절,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종로를 가로질러 학교에 갔다. 강남이나 홍대 주변에 비하면 이미 낡아버린 구도심이지만 20, 30년 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광화문에서 동대문을 거쳐 신설동까지 가다 보면 점점 지저분해지고 추레해졌다. 도로 양옆으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5, 6층 정도의 건물이 줄지어 있었다. 1층에는 식당이나 작은 가게들이 있었고, 위로는 학원부터 전당포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무실이 들어차 있었다. 제각각의 간판들이 어지럽게 매달려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몽롱한 느낌이었다.
매일 버스를 타고 지나며 건물을 볼 때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수많은 사무실에 누군가 있고, 밤이면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다시 같은 곳으로 나오는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수수께끼였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들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거대한 세계는 어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저 하나하나 보이는 창문 너머에 각각 사람이 한명씩 살고 있다니, 참 신기해.” 야마모토 나오키의 만화 '내일 다시 전화할게' 중에서, 한 인물은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이렇게 말한다. 같은 기분이었다. 알고 싶은 느낌, 엿보고 싶은 느낌. 이렇게 살아도 과연 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이렇게 엉망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TV를 본다. 그들을 알고 싶고, 나를 알고 싶어서. 직접 엿보기는 민망하고, 불법인 경우가 많으니까, 간접 경험으로라도 얻고 싶다.
일본 드라마 스트리밍 사이트인 도라마코리아에서 볼 수 있는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쿄TV에서 심야에 방송하다가 인기가 좋아서 저녁 시간으로 옮겼다. 심야에 방영할 때는 극단적이거나 아주 기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시간대로 가면서 약간 온순해졌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 역시 우리들의 이야기니까.
막차가 끊긴 전철역 앞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묻는다. 집까지 가는 택시비를 드릴 테니,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많은 이들이 거절한다. 집을 보여주기 싫고, 나를 알리기 싫다. 사적인 영역을 지키려는 이들도 있고, 단순히 집이 지저분하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선뜻 응한다. 혼자 사는 이도 있고,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하는 이도 있다.
혹시 집이 가까우면, 편의점에서 원하는 것을 사 준다. 공짜니까 이 기회다 싶어 많이 사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체로 평소 사던 정도로 산다. 그야말로 보통의 사람들이다. 도쿄만이 아니라 도치기, 후쿠오카, 시마네 등 다른 지방의 역에서 섭외하기도 한다. 다른 장소도 있다. 술집에 들어가, 술값을 내줄테니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동네 목욕탕 앞에서, 목욕탕 이용권 10장을 드릴 테니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지역 축제에 가서, 원하는 것을 먹거나 사 드릴 테니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
10대 고등학생에서 70, 80대의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응한다. 집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본다. 곳곳을 들여다보고 물건을 보며 이유를 물어본다. 30대의 부부는 일찌감치 대출을 받고 무리해서 집을 지었다. 남자는 어릴 때 가정이 어려워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 그래서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자, 인생의 거점이 될 집을 반드시 갖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때 사진작가이며 은행원이기도 했던 69세의 남자는 캠핑카에서 혼자 살고 있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남자는 지금도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두어 달 전 결혼한 20대 초반의 부부는 방 하나에서 생활하고, 아직 가구도 제대로 없다. 카메라는 그들의 집이 아니라,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고 프로포즈했는지 말하는 부부를 찍는다. 그들이 촬영에 응한 이유는 ‘집’을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을 자랑하고 싶고, 그것으로 더욱 용기를 얻기 위해서.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는 리얼리티 쇼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닐 것이고, 때로 카메라의 시선으로 왜곡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걸러진 것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연예인의 일상을 쫓는 리얼리티 쇼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연예인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진솔한 모습은, 사실 거짓이다. 거짓이 아니라 픽션이라고 하자. 연예인은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의 브랜드를 가꾸어간다. 카메라가 꺼지면 그들은 다르게 살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라고 완전 다르지는 않다. 카메라가 찍기 시작하면, 그들도 일종의 연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모든 것을 짧은 시간에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집은 이미 존재하고, 그 안의 물건들에 얽힌 사연도 마찬가지다.
목욕탕에서 만난 70세 노인은 집을 보여주고도 사연은 말하지 않다가, 1년 전 30년을 넘게 운영하던 가게가 불탔다고 말한다. 아래층에서 불이 나 순식간에 전소. 현장을 찍고 싶다는 취재진과 함께 간 노인은 잿더미 속에 묻혀 있던 불타지 않은 사진을 발견한다. 당시 전소한 것을 확인한 노인은 그 후 현장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중소기업의 비서인 여성은 프로그램의 취지를 의아해 하면서도 응한다. 원룸에 들어가니, 5살 아래 여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하다. 여동생은 3년 전 백혈병으로 죽었다. 대학생이 되어, 이제부터 자매의 우정을 제대로 나눌 것이라 생각하던 순간에 병에 걸렸다. 동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보면서, 일종의 의식 같다고 생각했다. 죽은 동생을 아직 놓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 모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동생과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를 정리하는 의식이 아마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집에 따라가도 될까요?'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크고 작고, 높고 낮고, 쓰라리고 경쾌한 모든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 연인과의 일상적인 이별을 슬퍼하는 대학생도 있고, 남성이면서 여자 옷을 좋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젠더리스 중학생도 있고, 많을 때는 연 800회나 공연을 하지만 여전히 무명인 17년차 개그맨도 있고, 4살 때 세제를 마셨다가 14년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다가 만화 '유유백서'에 빠져 코스프레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다시 말하게 되었다는 여성도 있다. 마을 축제에서 밝게 웃는 41살의 여성을 따라 월세인 작은 아파트에 갔더니, 공산당의 시의원이었다. 그는 건강하게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모두 다르지만, 저마다 굳건하게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며 봤던 이는, 56세의 여배우였다. 유명하지 않아 배우 일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그는 30대부터 프리 라이터로 인터뷰를 하거나 칼럼을 쓰는 일을 했다. 지금은 노래방의 스태프로도 일하고 있다. 자신이 배우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서 마련한다는 마음이 확고했다. ‘자신의 길만은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자신으로서 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여기 나오는 이들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와서 약간 숨을 고르고 있거나, 작지만 견고한 일상을 견디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나의 지난 길을 떠올리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아무 것도 아니지만 너무나 중요한 개인의 일상을 소중하게 지켜가는 그들이 평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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