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당 대표 이름 딴 법안 발의는 이례적?
김종인 비판 통해 '공정경제 3법 반대'하는 야당 견제?
SNSㆍ유튜브에 법안 공개하며 김종인 전방위 압박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종인법'을 발의했습니다. 상대 당의 대표(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름을 딴 법안을 발의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요. 진보층에서 인기가 높은 박 의원이 보수진영의 수장인 김 위원장의 이름을 본따 만든 법안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 의원은 대놓고 김 위원장의 이름을 법안에 상징적으로 적용했습니다. 그것도 김 위원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를 이용한 '상법 개정안'입니다.
밑에 설명하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김 위원장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여의도 정치권에선 상대당 대표급(당 대표ㆍ원내대표)에 대한 공세는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입니다. 자칫 여야의 정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죠.
4년 전 김종인이 낸 법안 일부러 복사ㆍ붙여넣기 한 법안 발의
박 의원이 낸 김종인법은 20대 국회인 2016년 7월 당시 김종인 위원장(당시에는 민주당 의원이었습니다)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과 같은 내용입니다. 김 위원장이 4년 전 낸 법안의 내용은 △전자투표제(주주총회 불참 시 온라인으로 투표) 단계적 의무화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선출할 이사 숫자만큼 의결권 부여) 단계적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모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 제기) 도입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자격 요건 강화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입니다. 대체로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제출된 법안의 상당 부분은 8월 말 정부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를 목표로 하는 '공정경제 3법(공정거래법ㆍ상법 개정안ㆍ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의 하나죠. 4년 전 상법 개정안에 민주당 의원 122명이 공동 발의했던 만큼, 이번 정기국회 때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게 정부ㆍ여당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박 의원이 낸 개정안은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의 경우 정부 안보다 더 강화된 내용입니다. 더욱이 민주당 지도부는 이미 재계의 반발을 고려, 집중투표제는 이번 공정경제 3법 처리 때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업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의결권을 주당 한표씩 주기 때문에 보통 대주주가 유리합니다. 그런데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선출할 이사의 숫자만큼 의결권이 부여돼 소액주주가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게 됩니다. 기업이 원하는 이사 선출이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기업이 여권과 협의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죠. 법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과 재계가 서로 한 발씩 물러서며 접점을 만들었는데, 박 의원이 다시 들고 나온 겁니다.
여당과 협의를 끝내 안심하고 있는 기업들을 다시 벌벌 떨게 만든 건데요. 이낙연 대표 체제에 앞서 이해찬 대표 시절 '1등 최고위원(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해서 붙은 별명)'을 지냈기에 정부ㆍ여당의 정책 처리 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텐데요. 여권 내부에서 어느 정도 논의가 정리된 내용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뭘까요.
김종인 '이중성' 비판해 '공정경제 3법 사수' 의지
모순적이지만 박 의원은 반드시 자신이 낸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박 의원이 노린 건 재계가 아닌 김 위원장입니다. 김 위원장의 '이중성'을 지적해 여권이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 처리에 힘을 싣기 위한 전략입니다.
4년 전 20대 국회 당시 민주당에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경제민주화에 앞장섰던 김 위원장이 지금은 상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로 태도를 바꿔 상법 개정안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걸 비판한 겁니다.
국민의힘이 '경제 3법'(국민의힘은 공정경제 3법이 중립적이지 않다며 경제 3법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처리에는 협조하겠지만, 노동 관계법과 연계해 처리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죠.
국민의힘은 아직 노동관계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법안입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에 '노동관계법과의 공정경제 3법의 연계는 있을 수 없다'며 국민의힘의 태도를 비판했죠.
박 의원의 의도도 이 대표와 같습니다. 이는 박 의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김종인법의 발의 취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박 의원은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김종인 위원장님, 진성성을 보여주실 때 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박 의원은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공정경제 3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리 당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과제로 삼고 있다"며 "(법안을 낸 건) 김 위원장이 당내 설득에 좀 더 매진해주십사 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님이 당내 논란을 무릅쓰고 (공정경제 3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혀 적지 않게 놀랐는데, 뜬금없이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자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며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노동관계법 개정을 던져놓고 공정경제 3법과 연계해 입법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김종인, 진정성 가지려면 공정경제 3법에 힘 보태야"
박 의원은 4년 전 김 위원장이 낸 법안에서 글자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고 설명했는데요. 심지어 법안을 발의한 제안 이유도 4년 전 김 위원장이 낸 것과 일치합니다. 복사ㆍ 붙여넣기 수준이죠. 이것도 모두 의도가 담긴 행동입니다. 스스로 만든 상법 개정안을 반대할 것인지 김 위원장에게 대놓고 질문을 던진 겁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2016년 김종인 의원 상법 개정안, 토시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발의. 국민의힘 의원님들 이래도 반대하시겠습니까'라고 적힌 문구를 함께 올렸습니다. 4년 전 김 위원장의 법안과 자신의 법안을 비교하는 사진도 올리면서 '똑같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향해 자신들의 수장의 정치 철학이 담긴 법안을 반대할 것인지 꼬집은 것이죠.
박 의원은 글을 마무리하면서 "김 위원장이 지금 책임지고 할 일은 과거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을 포함해,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을 설득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지금껏 한 말씀에 진정성을 보이는 길"이라고 촉구했습니다.
박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인스타그램은 물론 유튜브 '박주민TV'와 페이스북에도 올리며 김 위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박 의원의 전략이 통할지 공정경제 3법 처리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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