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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작가가 그려낸 한글 창제의 위대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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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작가가 그려낸 한글 창제의 위대한 비밀

입력
2020.10.08 14: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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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메노스키 '킹 세종 더 그레이트'

한글 창제의 비밀을 그린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제공

한글 창제의 비밀을 그린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제공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가여워한 어진 임금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를 만들고자 고심한 끝에 탄생한 ‘한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이야기가 한 미국인 작가를 사로잡았다. 세계적 TV SF 드라마 ‘스타트렉’의 작가 겸 프로듀서, 제작자인 조 메노스키다. 그는 5년 전 서울을 찾아 한국어까지 배웠다. 기록 체계로서 한글이 가진 정밀함과 기능적 우월함에 더해, 세종이라는 왕 한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이야기에 매료됐다. 더 놀랍게도 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세계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이끌렸다. 그래서 메노스키는 한글 창제 이야기를, 영어 소설로 써서 알리기로 결심한다.

최근 출간된 장편 소설 ‘킹 세종 더 그레이트’는 영어가 모국어인 작가가 영어로 쓴 한국에 대한 역사판타지 소설을, 다시 한글로 번역 소개한, 이색적인 책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어 번역본과 영문본이 동시 출간됐다. 메노스키는 이 소설을 토대로 영화나 드라마까지 만들 생각이다.



킹 세종 더 그레이트. 조 메노스키 지음. 핏북 발행. 365쪽. 1만4,000원

킹 세종 더 그레이트. 조 메노스키 지음. 핏북 발행. 365쪽. 1만4,000원


판타지물이니 상상은 자유다. 메노스키는 한글이 조선의 싱크탱크였던 집현전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아니라, 예술가 같았던 세종대왕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된 집념의 산물인 것처럼 그린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 몽골 등 한국과 접해 있는 이웃 국가들과의 긴장 관계를 집어넣었다.

특히 5~6세기에 동방에 전해졌다는 기독교(네스토리우스교) 사제와 세종의 비밀스러운 만남이 훗날 유럽에 한글 자모가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상상력까지 불어넣었다. 외국인 작가이기에 가능한 파격이다.

훈민정음 창제 뒤 조정 대신들의 반발과 “이 일은 명나라의 심기를 거스를 것”이라는 비판에 낙담하던 세종이 황씨 부인으로부터 한글로 쓴 첫 편지를 받아보는 장면은 압권이다.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황씨 부인은 자신의 조그만 심장이 벅찬 희열로 뛰노는 것을 느꼈다. (…) 남자, 그 중에서도 양반에게만 허락된 한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단지 새롭고 특이하기만 한 발명품이 아니었다. 황씨 부인은 자신의 앞을, 여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벽이 허물어지는 환상을 보았다.”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세종실록)이라는, 세종의 자유와 평등 실현의 의지가, 저 머나먼 어디메가 아니라 바로 지처겡 있던 황씨 부인에게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소설은 무수한 업적을 이룬 세종대왕의 다양한 인간적 면모도 함께 그린다. 사진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문'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소설은 무수한 업적을 이룬 세종대왕의 다양한 인간적 면모도 함께 그린다. 사진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문'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난잡한 시녀들이 연애편지를 쓸 때나 쓰이다가 어느 날 모든 이의 기억에서 잊히게 될 것”이라던 최만리의 예언과 달리 한글은 창제 후 반 세기 만에 지방의 노비들에까지 퍼졌다. 이후 약 600여년 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문맹률을 가진 나라가 됐다.

물론 이는 곧 단점이기도 하다. 작가, 그것도 외국 작가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역사 판타지물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세종에 대한 찬사가 거의 신화화에 가까운 수준이라, 정작 '국뽕'에 대한 경계심이 바짝 높아진 한국 독자들에겐 얼마나 효과적일까 싶다. 신미 스님이란 인물을 등장시켰던 영화 ‘나랏말싸미’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떠올려 보자면 더 그렇다.

여기다 원래 영어 소설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영문 말장난(“나는 감(hunch)을 잡았네. 곧 점심(lunch)을 먹으리라는 것을”)은 오히려 소설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년에 하루쯤은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준 한글의 기원을 바로 그 독서를 통해 되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소설도, 이 기사도 논리적이고도 우아하며 단순한 스물 여덟 개의 문자가 만들어낸 것일테니.

자, 이제 드라마를 기다려보자.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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