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선수가 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파이널B 수원삼성과 경기가 끝난 뒤 이곳 저곳 파인 그라운드에 허탈한 듯 누워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수원삼성 김민우(30)는 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의 하나원큐 K리그1(1부리그) 파이널B 경기에서 홀로 공을 쫓아 뛰어가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잔디가 깊게 파인 부분을 밟은 탓이다. 공격권을 잃었지만 김민우는 되레 크게 다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경기에서 선수들의 패스는 뜯겨나가거나 돌출된 잔디에 걸려 굴절돼 공격이 끊기는 일도 벌어졌다. 중계 화면엔 홈 팀 선수들마저 너덜너덜 뜯겨나간 경기장 잔디 때문에 플레이를 망친 뒤 허탈해 하며 웃는 모습이 꾸준히 잡혔다. 앞서 이곳에서 경기를 했던 울산 골잡이 주니오(34)는 "이런 잔디 상태는 선수들을 위험하게 한다"며 "기성용도 이 경기장에서 뛰다가 다쳤다"고 쓴소리를 던졌을 정도다.
지난달 23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FA컵 4강 2차전 승부차기에선 주니오를 포함해 양 팀 선수 6명이 연속 실축하는 일이 벌어졌다. 페널티 킥 지점 잔디가 심하게 훼손 돼 선수들이 직접 바닥을 다지고 킥을 했음에도 공은 허공을 가르거나 선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최근 이 구장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그라운드 관리 상태가 우수한 경기장에게 주는 '그린 스타디움상'을 받았다는데도 이 모양이다.
프로축구 K리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잔디와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말이 전쟁이지 무더운 여름만 지나면 순식간에 구장들의 잔디는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누렇게 죽어 맨땅을 드러내는가 하면, 선수들이 뛰는 걸음마다 너덜너덜 떼가 떨어져 나간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국의 프로축구가 열리는 구장이라기엔 창피함을 넘어 처참한 수준이다. 선수들은 중요한 순간 어이없는 킥을 날리곤 허탈해하고, 중계를 지켜보는 축구팬들은 "해외 빅리그들과 수준 차이는 바로 저 잔디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며 혀를 찬다. 선수 부상 위험도 큰 걱정거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년에 3번, 그리고 연말 시상식 때 종합평가를 반영해 ‘그린스타디움상’을 수여하지만, 관리가 안 되는 구장들은 매년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 언급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가장 악명이 높다. 이곳은 올해도 어김없이 시즌 초반부터 잔디 문제가 꾸준히 지적됐고,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잔디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인천과 수원 선수들이 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파이널B 경기에서 경합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7일 인천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홈 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잔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경기장 통풍이 수월하지 않은 데다, 지반도 잔디가 자라기에 좋지 않은 환경 탓이라고 한다. 이곳은 2012년 경기장 개장 이후 잔디를 전면 교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여름철 잔디 손상이 워낙 심해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경기장 전체 면적의 18% 정도를 새 잔디로 깔았지만 아직까지 잔디가 뿌리내리지 않아 선수들이 공 한 번 마음먹고 차면 디봇이 생겨 원활한 경기가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 관계자는 “24일 마지막 홈 경기 이후 총 면적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에 대한 보식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그 전까지는 잔디 뿌리에 산소를 공급하는 작업을 통해 뿌리가 (땅에)더 잘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사정은 강원 홈 구장인 강릉종합운동장, 광주 홈 구장인 광주축구전용구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 광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을 리모델링 해 전용구장화 한 광주축구전용구장은 지난 7월 이 곳에서 열린 첫 경기 때부터 잔디가 심하게 훼손돼 빈축을 샀다. 광주 관계자는 “긴 장마가 이어지면서 잔디가 심하게 손상된 것으로 안다”고 했지만, 같은 장마를 겪고도 상태가 준수한 잔디를 유지중인 구단들도 많아 설득력은 떨어진다.

광주와 강원 선수들이 8월 16일 처음 관중을 받은 광주축구전용구장에서 K리그1 16라운드 경기를 펼치고 있다. 광주=김형준 기자
경기장의 저질 잔디는 매년 반복되는 지적이지만, 구단 또는 각 지역별 시설관리공단 등 관리주체들은 매년 다양한 이유를 내세우며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재작년엔 폭염, 지난해는 태풍 때문이라더니 올해는 장마를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폭염, 태풍, 장마 없는 여름을 보내야만 멀쩡한 경기장을 유지할 수 있단 얘긴데, 잔디 관리에 최선이나 다 해보고 내놓는 변명인지조차 의문이다. 포항과 대구 정도를 제외한 구단의 홈 구장 잔디 관리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산하 시설관리공단에 맡겨져 있어 잔디 관리에 대한 전문성을 기대하기도 힘든 실정이란 게 현장 목소리다.
연맹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년 전부터 머리를 싸맸다. 연맹 관계자는 “관리가 안 됐을 때 제재를 가하기보단 평가를 전문적으로 하고, 컨설팅까지 제공해 발전을 돕는 게 현재까지의 기본적인 방향”이라며 “지난해부턴 기존 감독관들에게 맡겨졌던 잔디 평가를 잔디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를 했다”고 했다. 연맹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지난해 2차례, 올해는 한 차례 모든 경기장을 돌아보며 잔디를 평가하고, 개선을 위한 보고서를 남긴다. 연맹 관계자는 “연맹차원에서도 재작년부터 잔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일본 J리그 사례를 참고하는 등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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