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ㆍ여당의 ‘공정경제 3법'(공정거래법ㆍ상법ㆍ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처리에 협력하겠다고 나섰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냉랭하다. 일부 의원들은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과도하게 훼손한다”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하지만 재벌개혁 수단을 망라한 법안들은 박근혜 정부 때 국민의힘이 추진한 재벌개혁의 연장이다. 또 불과 3년 전 보수 진영 대선 후보들이 공약한 내용이기도 하다.
①재벌개혁 저작권은 朴 정부에 있다
요즘 거론되는 재벌개혁 수단의 상당수는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를 정조준 했다. 재벌 2, 3세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시장 가격보다 싼 값에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키운 후, 회사 지분을 파는 방식으로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관행을 막겠다는 게 골자였다. 과거 공정거래법의 부당지원 금지 조항으로는 이런 관행을 처벌하기 쉽지 않았다. 부당지원이 성립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상 가격보다 ‘현저히’ 유리한 수준으로 계열사 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 탓이다.
당시 재벌 그룹은 이를 악용, 총수 2세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시장 가격 수준으로 일감을 몰아줬다. 마진이 낮아도 일감이 많으면 이익을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2013년 7월 ①총수일가 지분이 30% 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 20%)가 ②그룹 계열사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일감을 받은 사실이 입증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6일 “당시 현대차 그룹의 현대글로비스가 ‘박리다매 전략'으로 계열사 물류 일감을 받았는데, 법 개정으로 이를 규제할 수 있게 됐다”며 “재벌개혁 제도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의 재벌개혁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 2014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총수일가 지분율을 29.9%로 줄이거나, 계열사를 통해 수혜기업을 간접 지배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하는 기업이 속출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규제 대상 지분율을 20%로 통일하고, 이들이 ‘50%+α’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②홍준표ㆍ유승민ㆍ안철수도 ‘재벌개혁’ 공약
이 같은 보완책은 이미 2017년 대선 당시 보수 야권 후보들이 이미 공약했던 내용이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 후보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겠다”며 규제 대상 지분율 기준을 상장ㆍ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낮추는 공약을 제시했다.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후보도 “재벌 총수일가는 일감 몰아주기로 경영권을 편법 승계하고 부당하게 사업 기회를 독점해왔다”며 비슷한 재벌개혁안을 내놓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대선 후보들이 모두 유사한 재벌 개혁안을 내놓았으나, 이후 3년 사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는 재벌의 내부거래 비중이 오히려 크게 늘었다”며 “그런데도 야권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꼬집었다.
③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말 치우친 법안일까
공정위는 2018년 3월 법조계와 학계 인사 23명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 4개월 논의를 거쳐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밑그림을 마련했다. 특위에 참여한 한 위원은 “특위에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다수 참여해 합의안 도출 과정에서 의견차가 상당했다”고 귀띔했다.
대다수 특위 위원들은 불공정 거래, 담합 등 경제범죄에 대한 검찰 고발 권한을 공정위에만 부여하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해 검찰이 공정위의 ‘1차 판단’을 거치지 않고 곧장 수사에 착수하는 방안은 진보 진영의 대표적 재벌개혁 어젠다인데,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공정위가 특위의 초안을 토대로 개정안을 발표하자 시민단체에서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포기했다”는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을 향해 “공정거래법을 비롯한 공정경제 3법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부는 20대 국회 때인 2018년 11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재벌개혁 관련 내용은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반(反)시장법”이라며 논의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보수의 정신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지, 재벌의 편법과 반칙을 감싸는 게 아니다”라며 “공정경제 3법 논의에 적극 참여해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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