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는 존속시킬 듯... 예외사유 늘리는 방안
여성계 "사문화된 낙태죄 부활시키는 것" 비판
정부가 낙태죄를 존속시키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는 낙태(인공 임신중절)를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현재 규정에서 한발 더 나아간 조치지만, 낙태죄 처벌의 폐지 자체를 주장해 온 여성계는 정부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7일 낙태 허용 시기를 임신 14주로 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정부가 내놓을 개정안은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임신 초기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형법상 낙태죄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나온 후속조치다. 헌재가 입법을 권고한 기한은 올해 연말까지다.
현행법상 낙태죄 처벌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 2가지 법률을 근거로 한다. 형법 269조 1항과 270조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한 의사를 각각 1년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모자보건법은 낙태에 대한 예외적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유전 질환이 있는 때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 △성폭행에 따른 임신 △혼인이 불가능한 혈족ㆍ인척 간 임신 △임신 지속이 임부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경우 등 5가지로 한정돼 있다.
지난해 헌재는 현행 법체계가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천 금지하면서 성폭행이나 유전 등 매우 예외적 상황에서만 허용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헌재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한 것으로,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거나 박탈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당시 낙태 허용 기간의 마지노선을 임신 22주 내외로 제시했다. 태아가 엄마의 몸을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최소 기간이 약 임신 22주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입법예고안에는 임신 14주까지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낙태를 해도 처벌하지 않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성폭행 등 예외적 경우에 대해서도 기존처럼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헌재의 결정 내용을 존중해 낙태가 허용되는 예외 사유를 넓히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입법예고가 되는 날부터 40일 이상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낙태죄를 존속시키면서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정부안에 여성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음에도 정부가 14주 이내에서만 낙태를 허용해, 사실상 사문화된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부활시켰다는 비판이다.
김민문정 여성연합 대표는 “입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혀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국가 책무를 저버리고 여성에게만 책임을 돌리려는 인식은 1953년 낙태죄 제정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형사 처벌로 다스리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배복주 전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정의당 부대표) 역시 “임신중지를 범죄로 낙인찍을 게 아니라, 임신 주수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체계화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라며 "개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교육을 선행하고 그럼에도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상담과 의료서비스를 통해 여성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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