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홍혜민의 B:TS]는 ‘Behind The Song’의 약자로, 국내외 가요계의 깊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드립니다.
"이제 저는 내려와야 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 내려와야 할지, 마이크를 놓아야 할지 그 시간을 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길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노래하겠습니다."
'곧 내려가마' 이야기했지만, 숱한 명곡들과 주옥같은 '소신 어록'으로 또다시 대한민국을 뒤흔들어버린 그는 여전히 건재한 이 시대의 '가황'이었다.
코로나19 시국 속 여느 때보다 침체됐던 올 추석,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진 이는 나훈아였다. 연휴는 지났지만, 그가 남긴 강렬한 '메시지'는 여전히 뜨겁다.
지난 30일 방송된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이하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시청률은 무려 29%였다. '15년 만의 안방극장 출연'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함께 150분간 쉴 틈 없이 이어진 '가황'의 공연은 노래 그 이상의 감동을 전했다.
당초 "다시 보기도, 재방송도 없다"라는 이례적 결정으로 추석 연휴 단 한 번 전파를 탈 예정이었던 해당 방송은 뜨거운 화제 속 긴급 스페셜 방송 편성으로 이어졌다. 본 공연 영상에 생애 첫 온택트 공연에 나선 나훈아의 비하인드 영상 등을 추가해 지난 3일 공개된 스페셜 방송 역시 18.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나훈아의 공연을 향한 역대급 관심을 입증했다.
올해로 74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무대는 그간 두문불출했던 나훈아의 녹슬지 않은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태어나서 이런 공연을 처음 해본다. 공연을 하면서 눈빛도 안 보이고 어떡하냐"라고 토로한 심경이 무색하게도 그는 고향, 사랑, 인생을 주제로 구성한 공연을 통해 '고향으로 가는 배' '고향역' '홍시' '무시로' '18세 순이' '잡초' '청춘을 돌려다오' 등 자신의 히트곡을 선보이며 2시간 30분을 가득 채웠다.
나훈아의 이번 공연이 중장년 팬층을 넘어 2049 세대에게도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다. 기존 팬들에게는 추억과 감동을, 젊은 세대에게는 '가황'의 압도적인 품격을 보여준 이번 공연에서 정점을 찍은 무대는 바로 신곡 '테스 형!'이었다.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 부르며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왜 또 저래/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라고 묻는 파격적인 가사는 2049 시청자들에게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여기에 곱씹을수록 현시대에 대한 질문을 철학적으로 담아낸 가사가 주는 깊은 여운이 더해지며 해당 곡은 '신드롬'급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70세를 넘은 나이에도 불타는 열정으로 민소매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채 무대를 누비는 그의 '위용' 역시 기성 가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으로 세대를 관통했다.
특히 나훈아가 이번 공연을 전면 노개런티로 진행하고, 공연 중 중간 광고를 삽입하지 않는 것을 그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의 '품격'은 다시 한번 조명됐다.
그가 선사한 역대급 무대 외에도 15년 만에 안방극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이번 공연이 '노래'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방송 이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나훈아의 '소신 발언'에 있었다.
이날 코로나 19 시국의 극복에 대한 응원 메시지를 전하며 국민을 위로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신비주의설'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신비주의라고 하지만 가당치 않다"라며 "어떻게 보면 언론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꿈이 고갈된 것 같아 1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잠적했다'라고 하더라. 이제는 뇌경색에 똑바로 걸어 다니지도 못한다고 하니까 똑바로 걸어 다니는 게 미안해 죽겠다"라는 '사이다' 발언으로 자신을 둘러싼 '카더라'식 추측에 일갈했다.
그의 소신 발언이 정점을 찍은 것은 공연 후반이었다. 나훈아는 "우리는 지금 많이 지쳐있다. 지금까지 저는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나리를 지킨 것은 바로 오늘 여러분"이라며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 모두 국민이었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 "KBS가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솔직하게 덧붙였다.
해당 발언은 강한 파급력과 함께 정치권까지 뒤흔들었다. 상당수의 정치권 인사들이 SNS를 통해 나훈아의 공연과 소신 발언에 대한 소감을 전했고, 급기야는 앞다투어 각종 정치적 해석까지 덧붙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중 가수' 나훈아가 어느 정치권 인사보다도 시원하고 시의적절한 발언으로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며 정치권에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는 점이다.
너도나도 '선한 영향력'을 외치는 요즘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은 현실이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대중의 애환을 어루만지며 사회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 나훈아의 '품격'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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