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식 부족한 사회초년생 서민 등에
'원금보장에 고수익' 유혹… 피해 잇따라
"무등록 사모펀드 판매 실태파악 필요"
‘사회초년생 1억원 만들기’
2018년 5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청년 대상 무료 재무상담 광고는 입사 1년이 채 안 된 김세리(가명ㆍ27)씨의 눈길을 확 잡아 끌었다. 김씨가 '1억 만들기'라는 문구에 끌려 광고를 클릭해 전화번호를 남기자, 서울 강남역에서 재무설계 전문업체 이사라고 소개하는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자신이 나온 기사와 다른 고객이 보내온 감사메시지 등을 보여주며 자신이 믿을 만한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A씨를 신뢰하게 된 김씨는 그가 사모펀드라고 소개하는 상품에 전세금 일부인 7,000만원을 투자했다. 만기시 원금은 물론 은행보다 높은 5% 이상의 이자를 주는 상품이라는 말에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 김씨는 “A씨가 사모펀드는 사실상 가장 안전한 펀드라고 해서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현재 이자를 받기는커녕 원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지식이 부족한 청년과 서민층을 노린 가짜 사모펀드 불법 판매가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원금이 보장되는 고수익 사모펀드'라는 광고는 불법유사수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하고 있지만,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 원금보장'이라는 말은 투자자를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김씨가 A씨를 통해 가입한 GRS투자자문의 ‘가로수8호 유한책임회사’ 상품은 불법으로 판매된 것으로 파악됐다. GRS투자자문은 당국에 금융투자자문업과 금융투자일임업으로 등록된 정식업체이긴 하지만,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는 아니어서 사모펀드를 만들어 팔 수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무등록 업체가 사모펀드 영업행위를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김씨뿐이 아니었다. 김씨는 A씨 등을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면서 피해자가 자신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김씨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무료 재무설계 광고를 보고 상담을 받다가, 권유 받은 상품에 가입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더 있었던 것이다.
전북 익산에 사는 개인사업자 이문석(가명ㆍ37)씨와 충남 천안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지훈(가명ㆍ32)씨도 A씨를 통해 사모펀드라고 소개 받은 ‘아이반플러스 유한책임회사’ 상품에 각각 5,000만원씩 투자했다가 김세리씨와 같은 상황을 맞았다. 부산에 살고 있는 최수희(가명ㆍ57)씨는 노후자금을 몽땅 날릴 판이다. 최씨는 “나처럼 부부 합산소득이 월 400만원도 안 되는 서민을 돕고 싶다는 A씨 말을 믿고 목돈을 맡겼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며 망연자실했다. 최씨는 A씨가 사모펀드라고 소개한 상품 4개에 1억원이 넘는 돈을 넣어둔 상태다.
그러나 A씨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이 판매한 상품이 불법인지 몰랐으며, 자신도 똑같이 투자해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고객들에게 준 GRS투자자문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명함은 해당 회사가 영업을 하라고 만들어준 것으로, 나는 GRS투자자문의 정식직원이 아니라서 아는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객에게 원금보장이 되지 않은 상품을 보장되는 것처럼 설명하고 판매한 부분에 대해서도 “은행 이자보다 나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을 뿐, 원금보장을 언급한 적은 없다”고 발뺌했다. 한국일보는 가로수8호 및 아이반플러스를 기획하고 운용한 GRS투자자문의 대표 강모씨에게도 연락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GRS투자자문은 자기자본 과대계상 등 다른 건으로도 문제가 돼 현재 영업정지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피해자들이 강 대표와 A씨를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피해자 측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인월의 김주석 변호사는 “원금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고소인들을 속여 상품에 가입하게 한 사건”이라며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를 가장한 불법유사수신으로 피해자가 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사모펀드 및 사모펀드를 가장한 불법유사수신 투자자들이 어떤 경로로 상품에 가입하고 있는지, 투자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실태 파악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에게도 주의가 요구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도권 사모펀드의 경우 최소 1억원 이상은 있어야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아준다고 하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며 “금융소비자정보포털(http://fine.fss.or.kr)을 통해 정식 운용사인지 아닌지 우선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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