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 속 숨 쉴 공간...공룡알 200개가 500만평 습지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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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 속 숨 쉴 공간...공룡알 200개가 500만평 습지 지켰다

입력
2020.10.06 17:00
수정
2020.10.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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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성 송산면 화성공룡알화석지

화성 송산면 공룡알화석지의 드넚은 갯벌 습지는 천연기념물 제414호 지정돼 있다. 밀집 개발로 신음하는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숨 쉴 공간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인 현재 탐방로가 폐쇄된 상태다.

차량이 뜸한 시골길에서 빨간 신호에 걸리면 잠시 긴장을 풀고 주위를 둘러본다. 조바심을 내려놓으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반대로 한산할 거라 여겼던 도로에서 교통이 정체되면 스트레스가 그만큼 커진다. 경기 화성은 가깝고도 먼 곳이다. 순식간에 인구 85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한 이 도시에선 시골이라 해도 한적한 길을 찾기 어렵다. 화성 공룡알화석지로 가자면 송산면 소재지를 통과해야 하는데, 교차로마다 몇 번씩 신호를 받아야 지날 수 있다. 도로 주변에는 소형 공장이 속속 들어서서 화물차 통행도 많은 편이다. 빈틈만 생기면 개발부터 하고 보는 수도권 집중과 난개발의 한 단면이다.

이렇게 작은 공룡알, 이렇게 넓은 갯벌 습지

송산면 소재지를 통과하면 주택과 공장이 들어선 구릉을 지난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어느 순간 시야가 툭 트인다. 지평선까지 보이는 광활한 대지다. 잡풀이 무성한 땅에 이따금씩 키 큰 나무 한두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다.

이곳은 1994년 시화방조제 물막이공사 이후 갯벌이 육지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약 132km²(4,000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땅 전체가 농지와 택지 등으로 개발될 예정이었지만 1999년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지속적인 조사와 발굴을 통해 지금까지 30여개의 알 둥지와 200여개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됐다. 이전까지 중국과 몽골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지만, 이곳처럼 대량으로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매우 희귀한 경우다. 게다가 뻘로 덮인 땅에 더 많은 화석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침내 2010년 약 16km²(483만평)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개발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체의 10분의 1이 조금 넘는 면적으로 그만큼 숨 쉴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화성 공룡알화석지의 공룡알 둥지. 실제는 달걀보다 조금 큰 수준이어서 잘 살펴야 볼 수 있다.



화성공룡알화석지 방문자센터에 전시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 복원 그림. 몸 길이 2m 안팎으로 작은 공룡이다.


화성 공룡알 화석은 시화호 공사 이후 생태 변화를 관찰하던 환경운동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했다. 붉은 암석 부근에서 날아가는 딱새를 발견하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동글동글한 화석이 모여 있었는데 나중에 공룡알로 판명됐다. 2008년엔 인근 전곡항 방조제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돼 일대가 공룡 서식지였음을 뒷받침했다. 등뼈 일부와 꼬리뼈, 뒷다리뼈 화석으로 복원한 이 공룡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1,000만년전) 한반도에 서식하던 뿔공룡으로 확인됐다. 전체 몸 길이가 1.7~2.3m 정도에 불과해 흔히 상상하는 거대 생명체는 아니었다. 그래도 공룡의 역사에 공식적으로 ‘코리아’를 추가한 쾌거였다. 이 공룡의 학명은 ‘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뿔공룡’이라는 뜻의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로 정해졌다. 탐방로 입구에 자리한 방문자센터에서 복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한국 뿔공룡에 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가야 공룡알 화석이 제대로 보인다.

타조알 하나가 달걀 20개와 맞먹는다는데, 지구상에 존재했던 가장 큰 생명체인 공룡의 알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걸까? 이런 기대로 찾아갔다면 몹시 실망할 수 있다. 실제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알 화석은 달걀보다 조금 큰 수준이다.

화성공룡알화석지 탐방로는 드넓은 초원을 가르며 이어진다. 왕복 약 3km다.


공룡알화석지 탐방로 중간 지점의 전망대 부근 염생식물이 붉게 물들고 있다.


전망대 부근에 놓인 화성공룡알화석지 캐릭터 '코리요'. 드넓은 평원에서 유일한 포토존이다.


공룡알화석지 탐방로는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해 누드바위, 해식동굴, 중한염, 하한염을 거쳐 무명섬까지 약 1.5km 이어져 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모두 높이 10m가 되지 않는 작은 바위섬이다. 각 섬 앞에 설치한 안내판을 보고 자세히 관찰해야 공룡알 화석을 찾은 수 있다. 퇴적층에서 염분이 빠져나가 구멍이 숭숭 뚫린 붉은 바위를 위아래로 훑다 보면 달걀처럼 동글동글한 화석과 둥지, 껍질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흥분할 일이지만, 공룡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만 품고 간다면 다시 한번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룡알 화석이 지켜낸 이 대지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풍광을 선사한다. 군데군데 물기가 남아있는 습지는 거대한 평원이다. 탐방로 중간의 전망 덱에 오르면 하늘과 초원만 보인다. 공장과 택지로 포위된 지역에서 이만한 안구 정화, 마음 정화의 공간이 남아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갯벌 습지도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다. 시화호 물막이공사가 마무리 된 지 26년, 시간이 지날수록 갯벌 바닥에 남아 있던 소금기가 빠져나가면서 습지의 식생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나문재, 산조풀, 칠면초, 띠,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이 차지한 공간은 해마다 줄어들고, 갈대와 억새가 점점 무성해지고 있다. 이따금씩 키 큰 나무도 자라고 있다. 그 덤불 속에서 고라니도 몸을 숨기고, 너구리도 먹이를 찾는다. 숭어, 장어와 온갖 조개 등 바다 생물이 살던 공간이 육지 생명체의 서식지로 변하고 있다. 바람만 스치는 황량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공룡알화석지 탐방로 부근에 자라고 있는 위성류에 분홍색 꽃이 피었다. 이곳 갯벌은 서서히 육지화하고 있다.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바위는 대부분 붉은색을 띠고 있어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공룡알화석지 탐방로 끝의 무명섬. 말 그대로 이름 없는 바위섬이라는 뜻이다.


화성 공룡알화석지는 밀집개발로 신음하는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공간이다.


공룡알화석지 탐방로는 왕복 3km가 조금 넘는다. 천천히 걸어 1시간가량 잡는다. 전 구간에 목재 덱을 깔아 걷기에 무난하지만 햇볕을 피할 방법이 없다. 챙이 넓은 모자나 양산이 필수다. 안개가 끼거나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주변이 신비로움으로 덮여 오히려 운치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인 현재 방문자센터와 탐방로는 한시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시화호가 잃은 것과 얻은 것

공룡알화석지에서 이어진 도로를 따라 끝까지 달리면 송산그린시티 전망대다. 신도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전망대가 먼저 세워졌다.

우음도 산꼭대기에 송산그린시티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시화호 건너편은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이다.


우름도 아래에는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멀리 시화호에서 가장 큰 섬, 형도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보면 시화호 맞은편으로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조성돼 있고, 반대편으로는 드넓은 습지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중 공룡알화석지를 제외한 나머지 땅에 송산그린시티가 들어설 예정이다. 애초 계획보다 축소되긴 했지만 몇 년 후면 6만가구가 들어설 이 신도시에 15만명이 입주하게 된다. 대규모 개발 속에서 공룡알화석지의 가치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지속적인 인구 유입과 도시 팽창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대규모 개발은 자연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온 인간의 역사까지 무참히 쓸어버린다. 전망대가 세워진 곳은 시화호 안에 있었던 섬 우음도다.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도 하고 거세게 부는 바닷바람이 소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고도 하는 섬이다. 섬 사람들에게 바다는 풍요로운 곳이자 언제나 두려운 존재다. 그 사나운 바다로부터 주민들을 지켜주던 3개 당집(본당ㆍ군웅당ㆍ각시당)은 이제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각시당은 우음도와 육지 사이 바위섬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크고 작은 바위가 지름 100m 내외의 섬을 이룬 형태로 만조에는 일부가 물속에 잠겼다가 간조에 모습을 드러내는 지형이다. 각시당 옆에는 1970년대에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은 특이한 모양의 군 초소도 있었지만 이제 이마저도 볼 수 없게 됐다.

송산그린시티가 들어설 시화호에서 가장 큰 섬인 형도의 산허리가 잘려 있다.


시화호 갯벌 습지 곳곳에 '송산그린시티 사업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시화호에서 가장 큰 섬이었던 형도는 허리가 잘려 흉측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주민이 모두 떠난 포구에는 하릴없는 쪽배만 몇 척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 송산그린시티 예정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출입 금지 표지판이다. 도로에서 벗어나 ‘사업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다. 화재 방지를 가장 큰 이유로 내세웠지만, 인간의 탐욕에 자연의 쉼터 하나가 또 쓸쓸하게 사라지는 증거처럼 보인다.

우음도에서 돌아 나오는 길, 드넓은 갯벌 습지에 바람이 분다. ‘그린’이라 이름 붙인 그 사업을 진행하며 분명 경제적 효과를 따졌을 텐데, 텅 빈 공간이 주는 정서적 가치도 포함됐을지는 모르겠다. 시릴 정도로 드넓은 이 평원에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을 테고, 또 누군가는 사색에 잠긴 채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을 것이다. 200개의 공룡알 화석이 지켜낸 이 공간이 볼수록 대견하다.

화성=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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