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이 독감 백신의 유통 과정 중 상온 노출 문제를 인식하고 국가 무료예방접종 사업을 잠정 중단하기까지 무려 10시간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중단 결정 공지가 병원들이 문을 닫은 뒤, 그것도 한참 후에 이뤄지면서 700명 안팎의 국민이 상온 노출 백신을 맞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의원(국민의힘)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질병청은 지난달 21일 오후 1시 30분에 상온 노출 백신에 대한 제보를 접수했다. 정확한 제보 시간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질병청은 그간 “오후”라고만 언급해왔다.
당시 제보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독감 백신은 접종 직전까지 2~8도(평균 5도) 사이 냉장 상태로 보관돼야 하는데 운송 도중 일부가 종이상자에 쌓인 채 일정 시간 상온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질병청에 전달됐다. 해당 장면을 담은 사진까지 첨부됐다. 제보 내용만으로도 즉각 접종 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사안이었다.
질병청은 일단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유통을 맡은 신성약품에 연락해 백신 공급을 중단시켰다. 유통 중단을 통보 받은 신성약품 대표 등 관계자들은 충북 청주시 오송 질병청으로 향했다. 경기 김포시 본사에서 질병청까지는 열차를 이용했다. 최소 2시간 넘는 시간이다. 신성약품 관계자들은 질병청 도착 직후 제보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제보를 받은 직후나 유선으로 신성약품 측에 유통 중단을 알린 후 등 여러 차례 사업 중단을 공표할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질병청이 전국 2만1,396개 위탁의료기관에 국가예방접종사업 중단을 공지한 시각은 21일 오후 11시에 이르렀을 때였다. 기자들에게 알린 시간도 이 때쯤이었다. 업체가 문제를 바로 인정했음에도 중단 결정을 발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질병청은 “내부 보고 및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상황 공유, 해당 업체에 백신 공급 즉시 중단 조치, 해당 업체 사실관계 확인 등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데도, 결국 내부 보고 과정과 중단 결정까지 시간이 허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당장 다음 날(22일) 무료접종을 앞둔 상황이라면 위탁의료기관이 문을 닫기 전 중단 공지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게 중론이다. 공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22일 하루에만 458명이 상온 노출 의혹이 제기된 백신을 맞았고, 이후에도 23일 21명, 24일 16명, 25일 109명 등 총 696명이 폐기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백신 접종이 이어졌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당장 백신 공백도 문제지만 (늦은 중단 결정으로)국가예방접종 사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게 뼈아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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