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사후 400년 만에 가장 웃긴 뮤지컬”(타임아웃 뉴욕)이라더니,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이 코로나 블루를 날릴 기세다. 18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 오르는 뮤지컬 ‘썸씽로튼’ 얘기다.
극의 배경은 르네상스 시대 영국. ‘흥행부도수표’ 극작가 바텀 형제가 당대의 아이돌 셰익스피어를 이기려 엉터리 예언가의 조언 아래 미래에 인기 있다는 ‘뮤지컬’을 만들어 나가는 좌충우돌을 그렸다. 척 봐도 짐작하겠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부터 ‘레미제라블’ ‘렌트’ ‘브로드웨이 42번가’ ‘오페라의 유령’ 같은 뮤지컬 30여편까지, 온갖 오마주와 패러디의 향연이 펼쳐진다.
언어와 역사문화적 배경 차이가 또렷한 한국 무대에 이 작품을 번역해 올린다는 건 ‘제2의 창작’ 수준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작보다 더 웃긴다”는 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두 주역, 황석희(41) 번역가와 김성수(51) 음악감독을 최근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황석희는 말장난 많은 마블 영화 ‘데드풀’을 비롯해 숱한 작품에서 선보인, 원작 이상의 창의적인 ‘초월 번역’으로 유명한 영화 번역가이고, 김성수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부터 가수 서태지까지 아우르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다. “‘썸씽로튼’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두 사람은 어떻게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을까.
황석희는 브로드웨이 원작의 내한 공연 때 자막 번역을 맡았다. “제작자가 이메일을 보내셨더라고요. 제가 번역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를 보는 순간 퀸의 음악이 새롭게 들렸다고요. 뮤지컬 번역은 처음이라 주저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김성수는 그 내한 공연을 보러 갔다가 음악감독이 됐다. “바로 그 자막을 보고 감탄했어요. 음악감독을 맡는 조건도 그거였어요. 번역은 황석희여야 한다.”
황석희의 번역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김성수는 “멜로디에 가사가 쩍쩍 달라붙어 있었다”며 “단순히 번역이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발성과 발음, 음악 장르까지 고려한 번역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가사뿐 아니라 대사도 ‘지킬 앤 하이트’ 같은 말장난부터 ‘간장공장 공장장’처럼 운율을 살린 ‘병맛’ 유머까지 언어유희가 가득했다. 황석희는 “영시 특유의 운율에다 패러디, 오마주, 유머까지 살려야 하니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고 말했다. 배우들도 창의력을 보탰다. 셰익스피어가 마치 시어를 읊듯 어순을 바꿔 말하는 “될까, 봐도, 살짝?” 같은 대사는 배우 박건형이 낸 아이디어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엉터리 예언가가 미래의 뮤지컬을 설명하는 ‘어 뮤지컬’ 장면은 아예 새로 썼다. 패러디할 작품을 한국 관객에 친숙한 작품으로 바꾸고 ‘서편제’ ‘광화문 연가’까지 집어넣었다. 김성수가 다른 작품에서 작곡한 음악과 대사까지 슬쩍 녹였다. 팬이라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알아채는 재미만으로도 두 배 크게 웃게 된다.
그 뒤엔 치열한 연구가 있었다. 황석희는 그동안 영화를 번역하면서 공부했던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다시 독파했다. 원문을 찾아가며 원작 대사의 뉘앙스까지 살리려 했다. 김성수도 첫 연습 때 영시의 운율 ‘약강 오보격’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니, 말 다했다. 하지만 아직도 성에 안 찬다. 이미 두 사람의 머릿속엔 보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바글바글하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주제의식이다. 황석희는 “순간적인 영감이나 천재성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관객에게도 가 닿기를 바란다”고 했다. “온갖 오마주와 패러디가 난무하는 극인데 가장 단순한 진리를 전한다는 게 역설적이죠. 그래서 더욱 묵직하게 느껴져요.” 김성수도 맞장구쳤다. “그 말이 정답이에요.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요. 그러니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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