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종전 선언 카드로 다시 띄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불씨가 또 꺼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의 이달 초 방한이 당장 무산된 것을 비롯해 백악관은 한반도 이슈를 한참 후순위로 미뤄 뒀다. 11월 미국 대선 전 북한과 미국이 깜짝 반전을 도출할 가능성, 즉 '옥토버(10월) 서프라이즈'도 완전히 물 건너갔다.
폼페이오 방한 연기? 사실상 무산?
미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일본만 예정대로 방문하고 한국 방문은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일정 취소를 청와대에도 미리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달 4~6일 일본을 거쳐 7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다. 자가 격리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 대신 외교ㆍ안보 현안을 챙겨야 한다는 게 명분이긴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방한 일정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10월 중 아시아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립 서비스로 끝날 공산이 크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은 한국와 일본의 반(反) 중국 전선 구축, 북한 상황 관리 등 상대적으로 느슨한 현안을 염두에 둔 일정이었다. 미국 정국이 코로나19로 빨려들면서 백악관은 한반도로 관심을 분산할 수 없게 됐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4일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 이후 미국 대선에서 한반도 의제가 갖는 중요성이 더 미미해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치료 기간과 막바지 선거 운동 등을 고려하면 폼페이오 장관이 빠른 시일 안에 한국에 올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했다.
'김정은 친서'가 불 지핀 북미 깜짝 만남도 무산
실현 가능성이 낮긴 했지만, '옥토버 서프라이즈'에 대한 기대가 여권에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최근 들어 북미 물밑 접촉설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전격 방미 같은 대형 이벤트가 성사되는 게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로 이어졌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최근 잇따라 미국을 방문해 '북한 문제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한 것도 분위기를 띄웠다. 폼페이오 장관도 얼마 전 "(북미 간) 진행 중인 노력이 여전히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의 셧다운으로 모든 가능성이 꺼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3일 KBS 9시뉴스에 출연해 "옥토버 서프라이즈라는 말이 처음 나올 때부터 현실성이 높지 않았다고 봤다"고 말했다. 특히 문 특보는 북미 간 물밑 접촉 가능성에 대해서도 "제가 알기로는 큰 진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일축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전을 보내 대화의 끈을 살려 뒀다.
문 대통령이 띄운 종전 선언, 공염불 그치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유엔 연설을 통해 '한반도 종전 선언'을 다시 띄우면서 남북ㆍ북미 관계의 진전을 꾀했다. 이에 정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건 게 사실이다. 북한이 신형 전략무기를 선보일 가능성이 있는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을 앞두고 미국의 외교 수장이 방한하는 것만으로도 북측에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으로 전부 무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10월 중에 다시 방한한다면 '미니 서프라이즈'는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의 끈을 남겨뒀지만, 불투명하다. 미국 대선 이후 새판 짜기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처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으로 미중 갈등 대응 측면에선 부담이 완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 목적은 남북미 상황 관리보다는 반중 전선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본에서 쿼드(Quadㆍ미국 일본 호주 인도 외무장관 협의체) 회의에서 참석한 뒤 한국에서 '쿼드 플러스' 참여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됐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연기되면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맞대응 성격의 방한도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미중 갈등 대응 측면에선 정부가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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