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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려도 형사 처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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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려도 형사 처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언제까지?

입력
2020.10.04 19: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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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파더스 등 공적 고발 행위도 처벌 대상
징역형 폐지ㆍ친고죄 전환 등 개정 논의 활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해 그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배드파더스 사이트. 배드파더스 캡처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해 그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배드파더스 사이트. 배드파더스 캡처

“A라는 학우가 학생회비도 내지 않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런 부분은 지양했으면 한다.”

2016년 12월 국내 한 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던 B씨는 같은 학과 학생 200여명이 가입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였다.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가려던 C씨에게 건넨 조언이었는데, 전년도에 학생회비 미납으로 후보 자격이 박탈된 A씨의 실명과 당시 상황을 ‘사실 그대로’ 쓴 게 문제가 됐다.

1ㆍ2심은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단순한 비방 목적이라기보다는 ‘공익을 위한 표현’이라는 점이 인정됐기에 그는 가까스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리더라도 언제든 수사 또는 기소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최근 형법 개정 논의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회적 제재를 목적으로 특정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생겨나는 데다, 해당 법 규정(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한 위헌 소송까지 제기된 탓이다. 일각에선 아예 ‘비(非)범죄화’를 주장하는 급진적 폐지론도 나온다.

이 같은 목소리에 불을 붙인 건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 운동’, 그리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 파더스’(나쁜 아빠들) 등이 꼽힌다. 특히 배드 파더스 운영자 구본창(57)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1월 1심에서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은 게 기폭제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고법 형사1부도 지난달 17일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조항과 관련,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판 종결 없이 기다려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실제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또는 수정’ 여론에는 점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실을 알려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행위마저 여전히 가벌(可罰)의 영역에 두어 위법성 판단을 받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완전 폐지론’이 당장 현실화하긴 쉽지 않다.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로 사생활을 낱낱이 공개하는 행위마저 제재하지 못하는 ‘사법 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처벌 규정이 없어지면 잠재적 죄의식도 사라져, SNS상의 무차별적 폭로를 엄벌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법정 형량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부분을 빼 벌금형만을 규정하는 게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실형 선고 비율은 매우 미미하다. 2013~2017년 징역형이 선고된 명예훼손 범죄 334건 중 사실적시 사건은 21건(6.3%)에 그쳤고, 실형은 딱 한 건뿐이었다.

현재 반의사불벌죄(피해자 의사에 반해 기소할 수 없는 범죄)로 정해진 소추 요건을 친고죄로 강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피해자의 직접 고소’가 수사 개시의 필수 조건이 되면 표현의 자유가 보다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다. 사단법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반의사불벌죄는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어 형벌권의 발동 시기를 앞당긴다”며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 여론을 위축시키고, 정치적으로 남용될 위험도 크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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