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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10대들의 이탈리아 아버지 "추석 때도 600명 밥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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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10대들의 이탈리아 아버지 "추석 때도 600명 밥 했죠"

입력
2020.10.05 09:57
수정
2020.10.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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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남 안나의집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
추석 당일에도 노숙인 600여명 무료급식 계속
쉼터 거쳐간 수백명 청년들의 아버지 역할도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안나의집에서 김하종 신부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1일 오후 경기 성남시 안나의집에서 김하종 신부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저도 이제 늙었습니다. 급식 봉사가 끝나면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파, 집에 가면 그대로 뻗어요."

1일 오전 경기 성남시 안나의집에서 만난 김하종(63ㆍ이탈리아명 빈첸초 보르도) 신부는 전날 노숙인 무료급식 봉사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올해로 한국에서 31번째 한가위를 맞는 김 신부는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그래도 오늘은 명절"이라며 "그래서 왠지 모르게 더 힘이 난다"고 미소 지었다.

추석은 이탈리아에서 온 김 신부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그간 안나의집 쉼터를 거쳐간 청소년들이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 '아버지'가 되어 준 김 신부를 찾아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노숙인 보호시설로 첫걸음을 뗀 안나의집은 2006년부터 성남시로부터 단기 청소년쉼터를, 2011년부터는 중장기 청소년쉼터를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다. 15년 동안 이곳을 거쳐간 소년들만 벌써 수백명. 가정폭력 등으로 갈 곳 잃은 청소년들이 김 신부의 보살핌을 디딤돌 삼아 이제 스스로 밥벌이를 하며,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들이 됐다.

재회에 대한 기대감을 잠시 접고 김 신부는 오전 6시부터 안나의집에서 운영하는 쉼터 3곳을 들러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했다.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켜온 '자신과의 약속'이란다.

"수많은 노숙인과 독거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먹으려고 매일 안나의집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삶에 의지가 없다고, 게으르다고 욕해서는 안 돼요. 이분들도 인생에서 수많은 실패를 겪고, 또 극복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다섯 번으로, 열 번으로 늘어나면서 더이상 어떻게 해볼 수조차 없는 지경까지 간 겁니다. 희망을 잃고 노숙인이 된 거예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이 아이들을 우리가 보살피지 않으면, 이 아이들도 결국 희망을 잃고 노숙인이 될 겁니다.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첫 번째는 어린 아이들의 희망을 구하는 거예요."

오전 11시쯤 안나의집으로 돌아와 무료급식 조리 준비를 마친 김 신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약속 장소인 근처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김 신부는 기자에게 휴대폰 속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쉴새 없이 칭찬을 늘어놓았다. 자식자랑을 일삼는 흔한 한국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이 아이는 쉼터에서부터 나무젓가락으로 모형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귀금속 세공사가 됐습니다. 이 반지 좀 보세요. 멋있지 않나요?" "이 친구는 어릴 때부터 착하고 듬직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낮 12시가 되자 '김 신부의 아들들'이 하나 둘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김 신부는 한 명, 한 명 꼭 껴안아주며 안부 인사를 건넸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식사 시간 동안 김 신부는 이들의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식탁 앞으로 기울였다.

한 청년이 "그때 신부님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하자, 김 신부는 "아빠 아니야. 이제 할아버지야, 할아버지"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말처럼 쉼터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정말로 김 신부도 나이를 먹어 백발의 노년이 됐다. 30년 전 "거지들에게 밥을 나눠주며 세력을 모은다"며 시비를 거는 깡패를 한주먹에 제압했던 로마 근처 시골마을(피산사노) 출신 서른 살 청년 빈첸초 보르도는, 이제 60대 중반 30년 성남 토박이 김하종이 됐다.

1일 오후 경기 성남시의 한 음식점에서 김하종 신부가 안나의집 쉼터 출신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승엽 기자

1일 오후 경기 성남시의 한 음식점에서 김하종 신부가 안나의집 쉼터 출신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승엽 기자

쉼터 출신 청년들을 배웅하고 안나의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 신부는 최근 자신과, 안나의집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환갑을 넘어선 탓에 안나의집을 혼자 도맡아 운영할 수 없을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얼마 전 유난히 빨리 뛰는 심장 탓에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큰 병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그에게 충분한 휴식을 하며 운동을 하라는 당부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커진 '책임감'이 8개월 넘게 그를 짓누른 탓이었다.

"안나의집을 저보다 잘 운영할 누군가에게 인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김 신부는 조금이나마 버틸 시간을 벌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도 끊었다. 혹시나 후원이 줄어들까 걱정이 앞서지만 그는 이보다 더 힘든 고난도 헤쳐왔다고, 안나의집엔 희망만 가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갑 속에 고이 넣어 두었던 장기기증 서약서를 꺼내 기자에게 내밀었다.

"제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게 1990년 5월 12일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이렇게 다짐했어요. '여기는 이제 내 나라다. 내 민족이다.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안나의집 운영을 내려놓더라도, 제 몸이 움직이는 마지막 날까지 자원봉사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곳에 나올 겁니다. 그리고 숨이 끊기는 마지막 날,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제 몸을 주고 싶습니다."

1일 오후 경시 성남시 안나의집에서 김하종 신부가 장기기증서약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승엽 기자

1일 오후 경시 성남시 안나의집에서 김하종 신부가 장기기증서약서를 보여주고 있다. 이승엽 기자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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