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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홀로 추석 나기...못 본 친구 만나고 푹~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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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홀로 추석 나기...못 본 친구 만나고 푹~ 쉬고

입력
2020.10.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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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처음 고향가지 않은 20대의 첫 명절은
끼니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게 옥의 티

대학 입학 후 처음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조모씨가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서울에 사는 친구와 함께 부암동 골목길을 걷고 있다. 조모씨 제공.

대학 입학 후 처음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조모씨가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서울에 사는 친구와 함께 부암동 골목길을 걷고 있다. 조모씨 제공.


“울산 가서 아버지랑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의대생 조모(24)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지 않았다. 조씨가 실습하던 대형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했기 때문.

5년 전 대학에 입학하며 상경한 그가 명절 때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라면 내려오라고 하셨을 부모님도 병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그의 ‘서울 잔류’를 쉽게 받아들이셨다.

조씨는 이번 추석에 내려가지 못하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와 바둑을 두지 못하는 건 아쉽다고 했다.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 추석 연휴엔 그동안 미뤄뒀던 책을 읽고, 서울에 남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가 추석의 풍경을 바꿨다.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추석 연휴에 고향 방문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됐다. 가족을 만나지 않는 것이 '장려'되는 추석은 그 동안 우리의 상상에 없던 일이다.


코로나19로 서울에서 보낸 첫 번째 추석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조모씨가 카페에서 친구와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조모씨 제공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조모씨가 카페에서 친구와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조모씨 제공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조씨의 연휴 첫날은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와 만남으로 시작됐다. 추석 연휴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미리 잡은 약속이다. 평소 보자보자 하면서도 서로 바빠 '다음에 보자~'며 미루기만 했던 친구를 명절에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집 근처인 종로구 부암동 인근을 무작정 거닐며 근황도 묻고 연애 상황도 공유하고 앞으로 계획 등을 얘기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데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부암동을 돌아다니면서 "코로나19 덕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와 터벅터벅 걷다가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가 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

추석 당일인 1일에는 집 근처 만화카페에서 만화를 읽었고, 다음 날인 2일 저녁엔 집 근처 성산 2교에서 고양대덕생태공원까지 뛰었다. 비는 시간엔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등 느긋하게 연휴를 보내며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하지만 조씨의 '서울에서 처음 추석 나기'도 끼니 해결이라는 복병에 . 비건 지향인 그가 갈 수 있는 집 근처 비건 식당이 추석 당일 문을 닫으며 난관에 부딪혔다. 추석 당일 점심은 서브웨이 비건 샌드위치, 저녁은 가까운 병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죽으로 해결했다. 추석 다음 날엔 비건 식당에서 마라탕 2인분을 배달 주문한 뒤 두 끼에 걸쳐 나눠 먹었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이모(24)씨도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이번 추석엔 서울에 남기로 결정했다. 고향엔 언제든 다시 갈 수 있기 때문. 5년 전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한 이씨가 고향이 아닌 서울에서 명절을 보내는 건 처음이다.

이씨는 서울에 남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과제를 하며 연휴를 보냈다. 약속 장소는 가게에 전화를 하거나 매장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본 뒤 연휴 기간 중 운영 여부를 확인하고 결정했다. 끼니를 거르지 않을까 하는 이씨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코로나19 때문인지 신촌이나 홍대 입구 부근에서 추석에도 운영하는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이씨가 연휴 첫날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던 홍대 방탈출 카페에도 늦은 시간까지 방탈출 게임을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출해진 차례상...반갑지 않은 질문받지 않아도 돼 다행

예년보다 간소해진 권모씨 가족의 추석 차례상. 권모씨 제공

예년보다 간소해진 권모씨 가족의 추석 차례상. 권모씨 제공


할아버지의 결정으로 충북 영동군으로 가던 성묘도 연휴 전주 어른 4명(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 5촌 당숙)으로 규모를 줄여 다녀왔고, 평소 20여명이 모여 지내던 차례가 사라졌다. 할아버지께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크게 걱정하시면서도 차례를 지내지 않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셔서, 추석 전날인 지난달 30일 가족끼리 소규모로 모여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모씨는 차례 음식을 준비하지 않게 되면서 늘어난 시간에 온라인 수업을 듣거나 집에서 넷플릭스를 봤다.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가족들과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명절마다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지냈던 권모(26)씨 가족의 차례상도 예년과 달리 간소해졌다. 차례상에 늘 올리던 코다리찜, 닭찜이 빠졌고 전의 종류나 수도 줄었다. 매년 오던 친척도 방문하지 않았다.

권씨는 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집으로 손님이 오지 않기로 하면서 “차례 상차림과 별개로 손님 맞이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서 좋고, 손님이 언제 오고 갈지 몰라 별다른 연휴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말했다. ‘(취업 시험은) 뭐 준비하니, (시험) 준비는 잘 되어가니’ 등 안부를 가장한 반갑지 않은 질문 공세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도 코로나19로 달라진 추석이 준 뜻밖의 '선물'이다.

권씨는 이번 추석에 차례 마치고 가던 영화관, 찜질방에 갈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영화관 대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왓챠에서 뿌린 ‘3일 무료 쿠폰’을 이용해 영화를 보고, 가족과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달라진 귀성길... 한산한 열차 내부와 '논스톱' 고속도로 주행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무궁화호 내부 모습. 승객들이 창가 좌석에만 앉아있다. 박모씨 제공

연휴 첫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무궁화호 내부 모습. 승객들이 창가 좌석에만 앉아있다. 박모씨 제공


경북 김천이 고향인 대학생 박모(26)씨는 연휴 첫날 여느 추석 때처럼 고향집에 갔다. 박모씨를 제외하고는 가족이 다 비수도권에 살고 있어 모여도 괜찮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

박씨는 코로나19로 고향 방문객이 크게 줄어 기차 예매가 쉬울 거라 예상했지만, 한국철도(코레일)에서 창가 좌석만 판매하면서 기차 예매는 예년처럼 전쟁이나 다름 없었다. 어렵게 티켓을 구해 열차를 탔지만 내부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평소 때면 입석까지 꽉 차 북적이던 내부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마치 밤 시간 타는 열차가 떠올랐을 정도였다.

박씨는 명절 때면 항상 찾아뵈었던 고등학교 은사님을 만날 수 없게 돼 아쉬웠지만, 그 대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올 추석은 연휴 첫날 KBS에서 방영된 나훈아 비대면 콘서트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이야기로 집안이 떠들썩했다.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박모씨와 박씨 가족이 함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모씨 제공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 박모씨와 박씨 가족이 함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모씨 제공


대학생 안모(25)씨와 인천에서 함께 사는 직장인 누나는 자가용을 타고 고향인 전남 여수로 출발하기 전 안모씨에게 '음료 금지령'을 내렸다. 귀성객들과 접촉을 최대한 피하려면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논스톱'으로 고향까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

안씨의 누나가 연휴 앞에 휴가를 낼 수 있게 되면서 귀성길 정체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26일 인천에서 출발해 여수까지 4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여수 집에 도착한 뒤로는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가족과만 함께 지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집에서 얘기를 나누거나 밤마다 집 근처 바다를 산책하며 연휴를 보냈다. 안씨는 "성인이 되고서 아버지와 짧은 전화 통화나 메시지 주고 받은 것 말고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라며 "처음엔 어색했지만 연휴 동안 부모님과 그 동안 못한 얘기를 나누니 참 좋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맞이한 이번 추석, 차례상이 사라지거나 모양을 바꿨다. 친척들이 모이지 않게 되거나 최소한의 인원만 함께 시간을 보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어른들이 주도적으로 준비했던 명절의 ‘관람객’이었던 20대에게 코로나19 속 추석 풍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성대한 차례상을 차려 조상에게 예를 다하고,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모인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이 추석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지 모르겠다.


이은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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