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4국' 우주피스공화국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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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4국' 우주피스공화국을 아시나요

입력
2020.10.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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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중세의 풍경 속 혁신 경쟁 펼치는 발트해 가다

에스토니아 탈린의 도시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시 모습. 이동학 작가

지난해 2월 핀란드 탐페레에서 열차를 타고 헬싱키로 향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덮은 눈이 조금씩 녹고 얼고를 반복했기 때문에 바닥은 진창이 되어 발을 뻗을 때마다 조심조심했다.

그렇게 헬싱키 역을 빠져나오는데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시리아에서 온 난민 청년 ‘윌리암’이었다. 윌리암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곤 종이컵에 돈이 채워지길 간절히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바닥의 흙물을 요리조리 피할 궁리를 하는 나보다 자신의 몸이 거대한 진흙에 빠져 허우적 댈수 조차 없는 현실의 사람이 있구나.’

핀란드 헬싱키 역 앞 광장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 청년 윌리엄의 모습. 이동학 작가

내가 여행했던 2017년부터 2019년은 지구촌 전체가 한계 성장에 다다른 모습이었지만, 사상 최대 규모의 여행객들이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시절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 기록은 올해도 경신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 5대양 6대주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사상 최대의 난민들이 국경을 넘었다. 지옥을 떠나 천국을 바란 것은 아니었겠지만, 떠나온 곳은 또 다른 지옥으로 여겨질 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시리아 난민 윌리엄의 삶도 희망을 찾아 떠난 이의 모습치고는 너무나 고단해 보였다. 가지고 있던 50유로를 그의 주머니에 넣어주고 핀란드를 떠나기 위해 나섰다. 지구상에 함께 살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뜻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가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헬싱키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큰 페리를 타고 약 2~3시간 정도면 탈린에 도착한다. 차창 밖으로 어두움 속에 두꺼운 얼음을 깨며 바다 위를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배의 내부는 고급스러웠고, 면세점과 레스토랑 등이 있었다.

대부분 핀란드 사람들로 보였는데, 몇몇에게 왜 틸란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 술을 사러 간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핀란드의 술값에 비해 에스토니아의 술값이 워낙 싸서 배를 타고 건너가 사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겉은 옛 것 그대로, 속은 혁신으로 꽉 찬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탈린 시내의 오래된 건물. 이동학 작가

에스토니아의 인구 규모는 대전보다 약간 작은 130만 명이다. 그 중 수도 탈린엔 43만 명이 살고 있다.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오래된 건물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탈린은 중세도시의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며 “우리가 있는 이곳(옛 시가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자랑했다.

나는 다음 날부터 그 문화유산을 천천히 거닐었다. 도시 전망대에 올라 눈 덮인 붉은 지붕들을 한눈에 넣으니 '예쁘다' '이색적이다'라는 느낌이 떠올랐다. 중고품 가게가 많다는 점도 특이했다.


에스토니아 탈린 시내의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동학 작가

에스토니아가 처음 내 머리 속에 들어온 것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박람회장에서 에스토니아 스타트업 회사의 스마트 미니 팜 프로그램을 접하면서였다.

당시 그 회사 관계자는 스마트 미니 팜의 강점과 함께 무료 대중 교통 정책, 전자 시민증, 전산 행정 등 에스토니아의 눈에 띄는 정책들을 설명했다. 또 셋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라트비아(2016년) 리투아니아(2018)년에 앞서 2010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도 알려줬다. 그리고 꼭 한번 가봐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탈린은 겉모습은 옛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탈린에서 열린 도시혁신을 주제로 한 세미나의 참석자들을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도시를 바꿔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이 쌓여서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지만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등 강소국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도시혁신 세미나 모습. 이동학 작가

예컨대 이미 1994년부터 국가 ‘정보정책의 원칙’ 초안을 만들었고, 1996년 세계 최초로 전자뱅킹서비스 실시, 2000년 전자캐비닛회의, 모바일주차시스템, 2002년 전자서명, 2005년 전자투표, 2008년 블록체인기술과 모바일건강, 2010년 전자처방, 2014년 스마트 도로 관리, 2015년 데이터 대사관, 2019년 정부의 인공지능(AI) 전략까지.

에스토니아는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기업활동지수 1위, 2019년 프리덤하우스에서 발표한 인터넷자유도 2위, 2019년 버텔스만재단에서 발표한 디지털건강지수 1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외국인들에게 개방되는 전자거주증 등록수도 2018년 4만8,700명에서 2020년 7만명으로 늘었다. 특히 이들은 온라인 법인 설립이나 온라인 금융 등 디지털 서비스를 에스토니아 국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유럽연합(EU) 진출의 관문을 쉽게 넘을 수 있게 됐고, 기업 법인 설립의 수가 2020년 현재 1만3,000개를 넘었다.

한편 내가 에스토니아를 지나던 2019년 초는 에스토니아가 주류세를 올린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는 옆 나라 라트비아와 주류 가격의 차이를 불러왔고, 중남부에 사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라트비아로 넘어가 술을 사온다고 했다.

에스토니아 소상공인협회가 라트비아와 국경에 설치한 세금 현황 게시판. 인터넷 캡처

두 나라 사이의 국경에는 에스토니아가 세금을 올리지 않았으면 얻었을 소비세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지기도 했다. 과거 소비에트연방(소련) 시절의 관성 때문인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동부 유럽 남자들의 술사랑은 끔찍했다. 추운 지방이라는 기후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 결과 주로 에스토니아로 술을 사러 오던 핀란드인들도 일부는 라트비아까지 와서 술을 사가는 사람도 늘었단다.

소련 시절 단절 위해 안간힘 쓰는 발트 3국

라트비아 리가 시내에서 뚜껑이 열린 차를 다고 다니며 술을 마시는 청년들. 이동학 작가

말이 나온 김에 자연스레 이웃 나라인 라트비아로 넘어가보자. 라트비아 수도 리가 역시 옛 시가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시내를 거닐던 중 희한한 장면을 마주했다. 시내를 느린 속도로 운행하는 전동마차에서 젊은이들이 흥에 겨워 술을 마시고, 취한 이들의 대화 소리가 소음을 일으키는 등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불쾌감을 줬다.

저렇게까지 술을 꼭 마셔야 할까하는 의문과 함께 스위스 취리히에서 봤던 레스트랑 트램이 떠올랐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트램 내부를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레일을 따라 도는 그 레스토랑 트램에서 와인이나 간단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중 가운데 끼여 있고 무언가 낙후 돼 있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지만, 3국이 군대도 함께 운영하고 발틱협의체를 통해 여러 정책들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세 나라 모두 전반적으로는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인구의 26%가 러시아인인 에스토니아와 같이, 라트비아 내 러시아 사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국민의 숫자도 비슷하다. 자국 언어를 중점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와 갈등이 표면 위로 올라오는 등 역사 속에서 외세의 지배를 당해왔던 설움을 완전히 씻어내진 못하고 있는 점도 에스토니아와 닮았다.

시내의 지하 차도를 걷다가 마주친 거리 예술가들의 음악도 옛 소련 시절의 대중가요였다. 원하던 독립을 이뤄냈고, 서구에 속해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동시에 과거를 회상하곤 하는가 보다.

라트비아 리가 지하차도에서 거리 음악가들이 러시아 음악을 버스킹하고 있다. 이동학 작가

여전히 라트비아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의 비율은 25.5%(2018년 기준, 라트비아통계청)로 인구 4명 중 1명 꼴이다. 거기에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된 이후 내각제를 채택, 민주주의의 길을 갔던 라트비아는 러시아 의존 구조를 서구 편입 구조로 바꾸기 위해 애를 써 왔다.

그래서 2004년 군사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NATO) 및 EU에 가입하고, 2014년 유로존, 2016년엔 OECD 가입국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출범한 정부 중 임기를 마친 내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국정 운영의 난맥은 계속 이어져 왔다. 정치인들의 부정 부패 문제가 있고, 각 정당의 정치가 정치 철학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인물의 낙마로 인한 부침이 큰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대에게 경제 정책 맡긴 리투아니아의 실험

리투아니아 수도 빌리우스 곳곳에는 예쁜 색감의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이동학 작가


리투아니아는 발트3국 중 가장 많은 290만 명이 살고,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있어 발트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탈냉전 시대, 소련 연방에서도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 비해 전체 인구 중 러시아인의 비율이 4.5%(2018년 기준. 리투아니아 통계청)로 상대적으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소수 인종 중 폴란드인 비율이 5.6% 정도인데, 애초 수도인 빌니우스는 1945년 2차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소련 연방으로 편입되었다가 리투아니아의 수도가 됐다. 이 때문에 리투아니아 정부가 폴란드 소수 민족을 대상으로 리투아니아식 이름을 쓰게 하고, 폴란드어 학교를 없애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폴란드 정부가 반발하고 있다.

한편 내가 또 신기하게 봤던 것은 20대의 청년이 경제부 장관이었던 점이었다. 비르기니유스 신케비시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두바이에서 청년 장관이나 인공 지능부에 20대들이 임명되었던 것을 볼 때도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발트3국에서 20대 청년이 국가의 경제 정책을 책임지는 것을 보니 또 다른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이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30대 총리나 장관이 배출되는 것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리투아니아의 주력 산업은 섬유와 직물, 화학이나 목재와 가구 등 제조업 분야이지만 최근엔 핀테크, 생명공학 등 정보통신(IT) 분야의 첨단 산업을 키우려는 포석이라는 평가들이 많다. 리투아니아는 자원이나 에너지 등 가진 것이 없는 형편이라 유능한 인재 같은 무형의 자산을 만들기 위해 고군 분투 중이었다.

빌니우스 역시도 중세 도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거대한 벽돌 길을 돌다 보면 발이 아프긴 하지만 그림 같은 정취를 감상하려면 감당해야 하는 수고로움이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가격이 낮은 곳을 고르다 보니 너무 외진 곳이었다. 밤 늦게 찾아가느라 힘이 들었고, 아니다 다를까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딱 봐도 가난한 동네였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우주피스공화국

우주피스공화국 한복판에 걸려 있는 국기. 이동학 작가


1997년 4월 1일 세계 지도엔 없는 나라가 탄생한다. 전 세계가 만우절로 여기는 날에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의 작은 마을에서 몇몇 예술가들이 모여 우주피스공화국을 만들었다.

과거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지만 나치가 유대인들을 끌고간 뒤 노숙인과 마약 중독자들이 스며드는 동시에 가난한 예술가들도 하나둘씩 마을을 채우면서 현재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 서부에 있는 바닷가 도시 클라이페다에서 빌니우스로 여행 온 세베리야 야누샤우스카이테 가족은 자신들도 우주피스공화국에 처음 와봤다며 “생각보다 볼게 없네요”라며 “4월 1일에 와야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추운 겨울이어서 이렇다 할 행사 등 볼거리가 없었기에 이들의 불평에 공감이 가면서도 파우피스(Paupis) 거리의 헌법 담벼락은 큰 영감을 준 곳이었기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주피스공화국(Užupis Respublika)은 해 마다 건국기념일인 4월 1일에 축제를 여는데, 빌네레(Vilnele)강 위의 다리에서는 통행 스탬프를 찍어주기도 한다. 다리 위는 여러 의미가 담긴 자물쇠들이 많이 걸려 있다.

이러한 가상 국가를 만든 이들은 앞서 말한 예술가들이다. 건국 당시에는 가난한 마을에 7,000여 명이 살았고, 이중 화가, 시인, 음악가, 영화감독 등 예술가들이 1,000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이후엔 대통령을 선출하고, 헌법도 제정했다. 소수지만 군대도 조직하고, 화폐도 만들어 지역 상점에서 쓸 수 있도록 한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천사동상은 2002년 우주피스공화국 건국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35개 언어로 번역된 우주피스공화국의 놀라운 헌법


우주피스공화국 헌법의 한글 번역본은 2018년 9월 6일 게시됐다. 이동학 작가

1. 모든 사람은 빌네레 강변에서 살 권리를 가지며, 빌네레 강은 모든 사람 곁에서 흐를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겨울철 온수와 난방과 기와 지붕을 가질 권리가 있다.

3. 모든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나, 이것이 의무는 아니다.

4. 모든 사람은 실수할 권리를 가진다.

......

12. 개는 개로서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13. 고양이는 자기 주인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주인이 어려운 순간에는 꼭 도와 주어야 한다.

......

28.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나눌 수 있다.

29.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것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

33. 모든 사람은 울 권리를 가진다.

......

39. 이기려고 하지 마라.

40. 자신을 방어하지 마라.

41. 포기하지 마라.

......

우주피스공화국의 헌법을 보면서 비록 예술가들의 상상력으로 가상의 국가로 선포된 문화예술 공동체지만, 헌법의 재미난 문구들과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조항들도 있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헌법 조항들은 35개의 언어로 번역됐지만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동판도 2018년 9월에 달렸다고 한다. 특히 국가가 아닌 소수 민족의 언어로 번역된 것들도 있어 소수 민족 배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발트 4국이 함께 써 나갈 모두가 편안한 세상


우주피스공화국 한복판의 천사상 모습. 이동학 작가

마지막으로 발트 3국은 함께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부터 라트비아 수도 리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까지 약 675㎞에 이르는 거리를 인간 띠로 이어 붙여 자유의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참가 인원만 200만 명(추정)으로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록된 1989년의 이 독립 운동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승인 받는 성과를 거둔다. 지금까지도 이 공동 행동은 발트3국 시민들의 마음 속에 뿌리 깊게 머물러 있으며, 세 나라가 함께 번영의 길을 여는 이웃 국가로서 힘을 합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발트 3국과 우주피스 공화국을 보면서, 3국이 아닌 4국이라 말하는 이유는 희망을 걸고 목숨을 걸어 도달 한 곳을 차갑게 느끼고 있는 헬싱키의 난민 윌리암이 떠올라서였다. 따뜻할 것만 같던 난민 중 운이 좋은 사람들은 환대를 받아 보호 속에 안착했고, 여전히 보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참 많다.

세상 사람들이 가상의 국가지만 우주피스공화국의 시민이 되어 헌법 5조 (모든 사람은 유일한 존재가 될 권리를 가진다), 16조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를 가진다), 31조(모든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다), 38조(모든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등과 같은 헌법 조항을 향유하며 살 수 있는 세상.

나는 꿈 꿔 본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상상. 아니, 우리가 사는 지구를 그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꿈.


박상준 이슈365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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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학의 도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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