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에 사는 정모(68)씨는 1일 오전 시댁 큰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대전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하나, 둘, 셋, 절합시다" 스마트폰에 나온 차례상
"안녕하세요~"
휴대폰 화면엔 서울, 충남 연무대 등에 사는 시댁 다섯 식구가 저마다 손을 흔들며 안부를 전했다. 조카들이 화상 회의 애플리케이션 '줌' 활용법을 앞서 알려주며 온라인에 징검다리를 놨다. 학교도 직장도 아닌 평범한 가정집에서 그것도 노년들이 모인 명절에 가족끼리 다자간 화상 만남이라니. 정씨는 "코로나19로 모이는 게 민폐라 식구들끼리 올해 추석엔 큰 집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친지 간 정과 조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까지 접을 수는 없는 법.
"자, 절합시다. 하나, 둘, 셋".
대전 큰집에서 정씨의 큰 시아주버니가 차례상을 통해 조상에 예를 먼저 갖추자 다른 식구들이 잇따라 절을 올렸다. 코로나19가 확 바꾼 '랜선 차례' 풍경이다. 정씨가 추석에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기는 결혼 44년 만에 처음이다. 서울시가 18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을 벌인 결과 3명 중 2명(67.9%)은 코로나19로 추석에 귀향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대구 1차 대유행으로 미리 겪은 '랜선 가족 만남'... 화상으로 윷놀이도
코로나19로 일상이 바뀐 만큼, 추석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이번 추석엔 고향에 오지 말라는 뜻이 담긴 '불효자는 옵니다'란 문구가 시골 곳곳에 현수막으로 걸리며 유행어가 된 것을 반영하듯, '코로나 귀향 포기족'이 적지 않았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강모(37)씨도 코로나19로 이번 추석에 대구 시댁에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화상 통화로 두 아이와 함께 '랜선 인사'를 드렸다. 강씨 부부와 그의 시부모에게는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올초 진행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온라인 안부가 이미 일상이 된 듯 보였다.
"우리 부부가 맞벌이라 대구에 사는 시어머니께서 올라 와 올 초 아이 둘을 돌봐주셨거든요. 그때 대구에서 코로나19로 난리가 나 시어머니가 집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공교롭게 유치원 다니는 딸이 생일이라 대구에 계신 시아버지와 화상 통화로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면서 소통했는데 이런 만남이 크게 불편하고 어색하지 않다는 걸 서로 경험했죠. 이번에 시어머니께서 먼저 '내려 오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강씨의 말이다.
온라인으로 모인 가족들의 추석놀이도 랜선으로 몰렸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곽모(22)씨는 "매년 큰집에서 모이다 이번 추석엔 코로나19로 안 모이기로 했다"며 "그런데 아쉬워 친지들끼리 컴퓨터 다 같이 화상으로 윷놀이를 했다"며 웃었다.
성묘와 추모도 인터넷에서 이뤄졌다.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는 서울 강동구 거주 김모(34)모씨는 지난달 30일 스마트폰으로 인천 한 추모공원 사이트에 접속한 뒤 밥과 국을 직접 클릭해 할어버지 차례상에 올렸다. 김씨는 "이제 갓 돌 지난 아이가 있어 코로나19로 여러가지가 신경쓰여 이번 추석엔 온라인 성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에 '벌초 대행족'도 부쩍 늘었다. 정부는 전국 142개 산림조합의 이번 추석 벌초 대행 신청 건수가 지난해보다 40% 이상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82년생 김지영'들의 '코로나 추석'은....
사상 초유의 '집콕 추석'에 '82년생 김지영' 즉 한국의 며느리이자 엄마, 아내들의 명절도 변했다. 일부는 시댁 등에 내려가지 않아 '민족 대이동'의 수고를 던 대신 생각지도 못한 걱정거리를 얻었다.
경기 분당에 사는 김모(38)씨는 코로나19로 시댁인 청주에 내려가지 않았다. 명절 일거리가 줄지 않았느냐는 말에 김씨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했다. 남편과 11세와 5세 두 아이를 위한 연휴 '삼시세끼'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갑갑하다. "코로나19로 어디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애들 데리고 나가서 사 먹기도 그렇잖아요. 연휴 내내 '집콕'해야 할 식구들 뭘 만들어 먹여야 하나 고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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