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 선생님 오셨어요? 이따 저희 집도 오시죠?”
지난 28일 양수진 사회복지사가 추석 명절 선물을 한아름 안고 서울 성동구의 임대아파트에 들어서자 양 복지사를 알아 본 어르신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양 복지사는 “이곳엔 생계지원을 받는 어르신 20~30명이 살고 계신다"며 "매주 월요일마다 식료품을 전달하러 오니 다들 얼굴을 알아보신다"고 웃어보였다. 양 복지사가 속한 옥수종합복지관은 이날 추석을 맞아 취약계층 어르신 149명에게 송편제작키트와 홍삼즙, 식료품을 전달했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추석 명절에도 '거리두기' 지침이 이어지면서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은 이번 명절이 더 쓸쓸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여파로 간간히 이어지던 자원봉사자 발길이 끊기다시피 한 건 물론 그나마 명절 외로움을 달래주던 소소한 명절 행사까지 줄줄이 중단돼서다. 때문에 복지관 관계자들의 발길이 외로운 노인들에게 가족 이상의 따스한 정으로 다가온다.
전날 복지사들이 찾아간 함경호(73)씨도 복지사들의 방문을 누구보다 반겼다. 함씨는 지난해 결장암과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우울증이 겹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독거 노인이다. 함씨는 한때 전국 영화관에 필름을 공급하는 잘나가는 무역업자였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뒤 회사가 기울면서 그의 상황도 급격히 나빠졌다. 아내는 20년 전 병으로 먼저 보냈고, 지금은 딸은 물론 연락 닿는 친적도 없다. 함씨는 “동네 교회 행사마저도 전부 취소돼 갈 곳이 없는데 복지사 선생님이 잠깐이나마 들러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에게는 복지관의 도시락 배달이 절실하다. 이영창(69)씨는 오래 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정강이가 부러지고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 당시 수술도 제대로 받지 못해 수십년째 제대로 거동을 못 하고 있다. 이씨는 “집에서 요리를 할 수 없는데 추석 땐 음식 배달도 어려워 복지관에서 전해주는 도시락이 없으면 영락없이 굶어야 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말을 건넸다.
30년 전 겨울 커튼 공장에서 일하다 빙판에 넘어져 척추뼈 3개를 다친 이후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는 박정연(69)씨도 “코로나19 탓에 바깥을 돌아다니기도 조심스러워 올해는 집에만 머물 예정인데 이렇게 복지사들이 잠깐이라도 들러 말벗이라도 해주니 너무 고맙다"고 했다.
예년 추석 때만 해도 취약층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이 활발했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코로나 여파로 '대면 접촉'이 어려워지면서 이들을 향한 온정의 손길이 상당히 희미해진 것이다. 서울시는 코로나 시국인 점을 감안해 올 추석엔 취약층을 상대로 진행했던 명절 행사도 모두 중단했다. 지난해까진 쪽방촌 주민이나 독거노인들이 복지관에 한 데 모여 공동차례상을 차리거나 송편 빚기ㆍ윷놀이 등 전통 놀이를 즐기는 행사들이 있었다.
서울시는 대신 독거노인 3만1,536명에게 추석 연휴 동안 비대면으로 안부를 확인하고, 구 단위 복지관에 따라 식료품이나 전통놀이 키트 등을 전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복지사들은 이런 사정을 이해하긴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양 복지사는 “코로나19 이전엔 복지관에서 직접 밥을 지어 무상급식을 했지만 최근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수 없어 완제품 도시락이나 즉석식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며 "치매예방 프로그램이나 운동시설, 동네 친구 프로그램 등 어르신의 정서ㆍ건강 관리를 위한 행사도 모두 멈췄는데 이럴 때일수록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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