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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아라뱃길, '뱃길'을 떼자

입력
2020.09.29 15:00
수정
2020.09.29 18:0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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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
최성용작가
아라뱃길. 최성용 작가 제공

아라뱃길. 최성용 작가 제공


인천 부평구와 계양구, 경기도 부천과 김포, 서울 강서구를 지나는 굴포천 일대는 고도가 해발 10m도 안되는 저지대다.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하천물이 넘치더니, 1987년 여름에는 큰 홍수가 났다. 1988년 9월, '굴포천 치수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홍수 시 굴포천의 물을 인천 앞바다로 빼내는 방수로를 만드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런데 발표내용에는 기왕 물길을 만들 때 조금 더 넓고 깊게 만들고, 한강 쪽으로 4㎞를 더 파내면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오가는 배를 띄울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제안 수준으로 추가됐다. 이것이 경인운하의 시작이 됐다.

이후 경인운하는 정책 결정자의 의지에 따라, 경제성 분석 결과에 따라, 감사 결과와 정치권, 지역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추진과 중단, 재검토를 오갔다. 그 기간이 20여년이다. 그리고 2009년 3월, 경인운하 공사가 시작됐다.

굴포천 방수로가 경인운하로 바뀌면서 사업의 주목적도 운하를 통한 물류가 됐다. 부차적으로 홍수도 예방하고, 공원·자전거길을 만들어 친수공간으로 활용했다. 이 공사에 2조6,000억원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실패다.


인천 서구 경서동 아라뱃길 경인항 인천서해갑문통제소. 한국일보 자료사진

인천 서구 경서동 아라뱃길 경인항 인천서해갑문통제소.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2018년의 아라뱃길 화물 운영 현황을 보면, 계획 대비 11%의 물동량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 바다와 인접해 있는 인천터미널에서 바로 처리한 것으로, 아라뱃길이라는 운하를 이용한 화물은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아라뱃길은 명백히 실패했지만, 또 성공하기도 했다. 아라뱃길 완공 후 굴포천은 범람하지 않았다. 아라뱃길은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됐고, 아라뱃길 자전거도로는 명소가 됐다. ‘물류’라는 주목적을 빼고, 나머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라뱃길은 ‘뱃길’로 규정되어 있다. 이로 인해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아라뱃길의 평상시 수질은 4~5등급이다. 이는 ‘뱃길’로 쓰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친수공간으로 활용하기에는 나쁘다. 아라뱃길에는 어쩌다 유람선이 지나는 정도이지만, 배가 지나는 곳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상레포츠가 금지되어 있다. 김포터미널 쪽에 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지만, 그들은 아라뱃길로 오지 못하고 한강으로 나간다. 아라뱃길 서쪽 끝인 정서진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만, 인근 공간은 대부분 ‘항구’로 규정되어 있어 방문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들 수 없다. 아라뱃길 기능 재정립이 필요한 이유다.


아라뱃길의 청둥오리. 최성용 작가 제공

아라뱃길의 청둥오리. 최성용 작가 제공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는 아라뱃길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아라뱃길 기능 재정립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진행 중이다. 물류 기능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 기능을 축소 또는 전환함으로써 아라뱃길(수로, 주변공원, 선박터미널 등)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이를 행정과 전문가, 시민이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이 ‘아라뱃길 기능재정립 공론화’의 취지이다.

지난 2년은 공론화위원회와 연구진이 아라뱃길의 기능 재정립을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토론하고, 몇 가지 개선안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17일과 26일, 지역 주민과 물류 사업자 등의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48명이 모여 최적안 7개를 확정했다. 올 10월, 인구 구조 등에 따라 선발된 120명의 시민이 모인 시민위원회에서 세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경인운하를 둘러싼 논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고, 결정된 사안이 뒤집히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공론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지역 국회의원이 독자적인 아라뱃길 활성화 방안을 들고 나온 것도 시민들의 의구심을 키웠다. 지난 9월 두 차례 진행된 워크숍에 참여한 시민들의 입에서는 공론화를 통해 모아진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 반복됐다.

아마도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은 공론화를 통해 의견을 모으는 것까지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론화는 공론화대로, 정책집행은 정책집행 따로 한다면 공론화라는 절차는 예산과 시간만 낭비한 결과가 될 수 있다. 이제 최종 결정만이 남았다. 10월의 시민들의 의견은 결론이 될 수 있을까?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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