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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위에 선 공권력의 폭력

입력
2020.09.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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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차티 사건(9.29)

자신들이 겪은 일을 증언하며 우는 바차티 주민들. indianexpress.com

자신들이 겪은 일을 증언하며 우는 바차티 주민들. indianexpress.com


1992년 6월 20일, 인도 타밀나두주 다마푸리의( Dharmapuri)의 작은 마을 바차티(Vachathi)에 무장 경찰 108명과 산림 감시원 155명, 세무공무원 6명 등 269명이 들이닥쳤다. 값진 향수 원료인 샌달우드(Sandalwood)의 불법 벌목과 밀거래 근절을 위한 주 정부 차원의 대규모 단속이었다. 그들은 만 이틀에 걸쳐 여성 주민 18명을 집단 강간했고, 성인 남성 100여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으며, 300여가구 마을을 파괴했다. 그리곤 압수한 목재 앞에 자신들이 강간ㆍ폭행한 주민들을 세워 '증거 사진'을 찍었다. 주 법무당국은 주민 105명을 기소했다. 기소 항목 중에는 심지어 공무집행 방해도 있었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2주 뒤에야 자신들이 당한 일을 타밀나두 부족회의에 알렸고, 부족회의는 인도공산당(CPI)을 통해 세상에 고발했다. 하지만 지역 경찰은 강간ㆍ폭행 사건 접수조차 거부했다. 주 산림당국은 그해 8월 10일 '공정하고 독립적인' 자체 조사 보고서를 통해 "강간은 터무니없는 주장이고, 마을 방화 및 파괴는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공권력을 비난하기 위해 주민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주 장관이던 배우 출신 여성 정치인 자얄라리타(Jayalalithaa) 역시 공권력 범죄를 전면 부인했다. 말레이계 소수부족인 바차티 주민들은 인도 최하층민 달리트(Dalit)에 버금가는 사회적 약자였다. 고소ㆍ고발과 기각, 재판과 공판 지연의 길고도 끈질긴 싸움이 시작됐다. 외신과 지역 인권운동가들이 주민과 CPI를 도왔다.

법원은 사건이 난 지 20년이 지난 2011년 9월 29일에야 당일 현장에 출동한 경찰 등 215명 전원에게 1~17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나머지 54명은 그 사이 숨진 이들이었다. 주 정부는 당시까지 수감 중이던 주민 전원을 이듬해 석방했고, 협상을 거쳐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피해 생존자에게 보상금 총 3,250만루피(약 5억 원)를 지급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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