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만 공정하면 된다? 이젠 결과의 정의, 불평등을 얘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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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만 공정하면 된다? 이젠 결과의 정의, 불평등을 얘기할 때"

입력
2020.10.01 06:00
수정
2020.10.0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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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혜영 의원은 "결과의 정의와 분리된 공정은 공허한 수사"라며 "기계적 공정을 따질 것이 아니라 공정의 기준을 '불평등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에 맞춰 재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대근 기자

공정을 보는 눈은 세대, 남녀, 이념, 직업에 따라 모두 다르다. 한국일보 특별기획 ’공정을 말하다‘가 네 번째로 만난 사람은 장혜영(33) 정의당 의원. 이른바 ‘SKY 자퇴생’으로, 장애인 동생을 둔 인권운동가로 이미 국회입성 전부터 널리 알려졌던 활동가 출신이다. 그는 본인의 첫 대정부질문에서 정부 여당의 핵심그룹인 86세대를 향해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차갑게 식었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기득권과는 모든 조건에서 거리가 먼,젊은 세대이자 여성이자 진보 정치 신인으로서의 공정에 대한 시각을 들어 봤다.

-30대 여성, 그리고 진보정치인이 보는 공정은 좀 다를 것 같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고 말했듯이, 공정은 말 그대로 과정의 언어 아닌가. 공정은 본질적으로 결과의 정의로움으로 이어져야 가치를 온전히 발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시대의 정의에 기여하지 않는 공정, 결과의 정의와 분리된 공정은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왜 근래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 화두가 되었을까.

“불평등 때문이다. 공정성이라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진짜 화두는 불평등이다. 또 공정 뒤에 숨어있는 단어는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면 정의가 달성된다는 시각인데, 정말로 공정한 경쟁이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계적 공정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 정의에 비춰 공정의 규칙을 재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정의는 무엇인가.

“시대의 부정의는 불평등과 기후위기다. 따라서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게 정의로움이다.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가가 자녀의 평생을 결정하고 부와 가난이 세습되며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지금은 그저 과정의 공정만을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을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 6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장 의원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의 질,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면 불평등 해소를 위한 어떤 좋은 제도를 제안해도 사회적인 논의가 힘들 것"이라며 "학력, 장애, 인종 등 지금까지 사람을 얕잡아보던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확한 기준 세우기가 반드시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이주민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의 평등한 지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어떤 불평등이 가장 문제인가.

“불평등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 외에 젠더, 청년, 장애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불평등이 중첩돼 있다. 한국여성은 남성 대비 70%가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남녀 임금격차 부동의 1위다. 사회 고위층에선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 코로나19로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한 여성 비율이 남성의 두 배인 게 현실이다. 청년 현실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최종 학력이 중졸 이하인 청년은 저임금이 지속될 일을 하게 되는 비율이 과거보다 뚜렷하게 상승했다. 재난은 평등한데 이주민들은 마스크를 살 권리, 재난지원금을 받을 자격에서 배제됐다. 장애인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한 채 시설로 격리된다. 기후위기는 또 어떠한가. 상위 1% 부자가 탄소배출의 15% 책임이 있는 반면, 하위 50%의 인류는 탄소배출의 7%만 책임이 따른다. 이 불평등한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공정을 공정이라 할 수 있을까."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나. 열악한 환경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정책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지. 오히려 이런 정책이 노동현실을 더 어렵게 만들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세상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자는 게 아니다. 정규직에 어울리는 직무인데 비용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사용한다면 이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노동의 정의로움은 비정규직이든 청년이든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관계없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어떤 방안이 있나.

"소득에 기반한 전국민 고용보험이 가장 중요한 의제다. 청년기초자산도 현실적 정책이 될 수 있다. 이는 재난지원금 이슈와도 연결된다. 차등 지급을 하려면 누가 진짜 힘든지 알아야 하는데 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작이다. 영국은 이미 시행 중이다. 실시간 소득파악시스템을 갖추게 되면, ‘노동자성이 어떻게 인정되냐’ 같은 오랜 논란에서 벗어나 소득 증감에 따라 그 사람의 경제상태를 보고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다. 이는 완전히 다른 체계의 복지로 나갈 수 있다는 거다. 모두 우리 당론이고 앞으로 입법을 통해서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장 의원은 지난달 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86세대를 겨냥해 "민주화 주역이 기득권이 돼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됐다"며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다던 그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차갑게 식어버렸나"라고 비판했다. 뉴스1

-대정부질문에서 86세대를 향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86세대의 정의와 지금 시대의 정의에 차이가 있나.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로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86세대의 정의는 호헌철폐와 독재타도였고 온 힘으로 자기 시대의 정의를 실현했다. 지금의 정의는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힘을 합쳐 싸울 것을 촉구한 것이다.”

-지난달 청년의 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이 공정을 37차례나 강조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청년에게 공정이 키워드라는 걸 청와대가 인식하고 있고 나름 성찰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너무 조심하는 것 같다.”

-공정이슈를 포함해 청년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될 공간이 부족한 것 같다. 청년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정치인이 청년들에 대해 일관된 요청을 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유의미한 유권자 집단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 세대 사람들이 현재 세대인 청년, 미래 세대인 청소년의 운명을 결정할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따라서 청년 정치인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법제들이 크게 미비하다. 내 임기중에 청년정치발전기금 조성을 반드시 해낼 생각이다. 정당법상 정당가입자격을 낮추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2020의사국가시험 응시대상자의 14%만 응시한 가운데 지난달 10일 서울 광진구 소재 한 시험장의 모습. 의사협회는 미응시 의대생에 대한 구제조치를 요구 중이지만 정부는 국민적 동의 없이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뉴스1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한 의사 파업과 국시 거부 의대생의 재응시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은 어떻게 보나.

“문제의 핵심은 지역격차가 극심하고 공공의료가 취약한 현행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느냐다. 정부는 이에 대해 공공의대 설립 등의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쟁점은 ‘정부 정책이 정말로 해당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나’가 되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의사가 되는 공정한 길은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공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사적인 경쟁의 문제로 치부해 논의하는 지금의 담론구조에 커다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시 재응시 기회를 주는 것이 여타 국시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불공정이라는 주장은 엄중한 코로나19 상황에서 '괘씸하게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을 벌주는 수단으로 보기에 나오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의대생의 국시 거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 보기 보다는 정책적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게 얘기할 문제는 아니지만 조국 장관 딸 입시와 추미애 장관 아들의 휴가 논란을 어떻게 보는지. 공정성 문제인가, 아니면 정치 공세인가.

“무리한 정치공세 측면도 분명히 있다. 대정부질문 때 코로나19 민생대책을 다뤄야 할 소중한 시간이 추 장관 아들의 휴가를 둘러싼 공방에 허비됐다. 비난할 사안만 생기면 정쟁에만 몰입하는 태도가 국회 안에 너무 강하다. 다만 고위층 인사가 자녀 문제로 군에 전화를 건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는 불편한 일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기득권층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공익보다 사익을 위해 쓰는 걸 봐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추 장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쟁으로만 치부한다면 큰 착각을 하는 것이고, 그 착각의 대가는 혹독할 수 밖에 없다.”

◆인터뷰 순서
1.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3.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한화증권 사장
4. 장혜영 정의당 의원
5.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송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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