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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LG에겐 남다른 의미"… SK와의 소송전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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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LG에겐 남다른 의미"… SK와의 소송전 비하인드 스토리

입력
2020.10.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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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 뺏긴 LG반도체
지금의 SK하이닉스로 '간접 악연'
"빅딜서 겪었던 아픔 되풀이 안 돼"
'기술 빼앗기면 사업 잃을까 우려' 분석도

"LG는 외환위기 때 반도체를 빼앗긴 이후 배터리에 사활을 걸었어요. 흔히들 배터리를 '제2의 반도체'라고 하는데, LG 입장에서 이 말은 단순한 기대나 전망이 아니라 의지와 집념인 셈이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법원에서 전기차용 배터리의 영업비밀 및 특허권 침해를 둘러싼 법적 다툼을 벌이며 첨예한 진실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2일 LG그룹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재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을 향해 맹공을 펴고 있는 LG화학의 입장에 대해 이 같이 전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주장과 반박, 재반박 입장을 번갈아 내며 이어가고 있는 공방은 왜곡, 억지, 거짓 등의 표현이 서슴 없이 등장하며 자존심 싸움 양상으로 번진 형국이다. 영업비밀 침해 관련 ITC 예비판정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판정을 얻어낸 LG화학은 ‘증거 인멸’을 무기로 공세의 고삐를 쥐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적극적인 방어와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1995년 12월 4일 열린 LG반도체 구미 제1공장 기공식에서 구본무(왼쪽에서 여섯 번째) 당시 LG그룹 회장과 허창수 당시 LG전선 회장(일곱 번째) 등 LG 관계자들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5년 12월 4일 열린 LG반도체 구미 제1공장 기공식에서 구본무(왼쪽에서 여섯 번째) 당시 LG그룹 회장과 허창수 당시 LG전선 회장(일곱 번째) 등 LG 관계자들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업계에선 LG화학이 집요하게 SK이노베이션을 몰아세우는 배경엔 과거 LG그룹이 겪었던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 되는 걸 막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선 재계 관계자의 말처럼 LG그룹은 1999년 당시 김대중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후속 조치로 이뤄진 ‘빅딜’에서 LG반도체 경영권을 빼앗겼다. LG는 현대전자와 누가 인수주체가 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후 현대가 LG반도체를 인수해 출범한 현대반도체는 경영 위기를 겪다가 공교롭게도 2012년 SK그룹의 품에 안겼다.

LG 입장에선 결국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SK하이닉스가 LG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남았을 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SK가 직접적인 인수 주체는 아니었지만, 이 역사를 기억하는 LG로선 SK에 우호적일 수 없다는 분석이다.

LG반도체가 현대에 인수되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LG가 반도체를 빼앗긴 것에 대해 얼마나 상실감이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98년 12월 25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반도체 빅딜 평가기관인 '아서 디 리틀(ADL)'이 LG반도체와 현대 통합법인의 경영 주체로 현대전자를 낙점한 것과 관련해 구본준 LG반도체 사장은 “이번 평가는 관련 당사자를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진행돼 신뢰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구본무 당시 LG그룹 회장은 청와대 회담에서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팔더라도 반도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룹 전체가 ‘반도체 지키기’에 사활을 걸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반도체를 잘 하고 있는데,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가고 돈을 쓰던 누군가가 욕심을 부려 (LG반도체를) 빼앗아 갔다”며 “최대한 버텨봤지만 결국 포기했고, 그 덕분에 정치적으로 얻어 맞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년 뒤 언론을 통해,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사업에 협조적이었던 현대그룹이 반도체 사업 역량 측면에서 열세임에도 LG반도체를 인수했던 것은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된 결과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998년 당시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은행들이 사상 처음으로 LG반도체에 대해 빅딜 협상 차질의 책임을 물어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등 집단 금융제재 방안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은행권 내에서도 지나치게 일사분란한 개입 결정과 법적인 타당성을 두고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재계 안에서도 여러 정황상 그때 LG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후 LG는 빅딜 안을 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멀어졌고, 구본무 회장은 2013년까지 14년간 전경련에 발길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LG반도체 빅딜 당시 LG반도체 서울 본사와 청주·구미 공장 직원 7,000여명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현대전자와의 빅딜에 반대하는 LG반도체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LG반도체 빅딜 당시 LG반도체 서울 본사와 청주·구미 공장 직원 7,000여명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현대전자와의 빅딜에 반대하는 LG반도체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LG가 과거 빅딜에서 배운 교훈은 명확했다. 자체 기술력을 갖지 못하면 사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LG반도체 빅딜 당시 LG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을 뿐 아니라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을 제외한 점유율과 매출 등에서 앞서는 점, 전자·통신·가전 등 다른 사업과의 연계성 때문에 전략적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인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기업 히타치의 기술에 의존한 LG보다 독자 기술력을 확보한 현대전자가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고배를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SK이노베이션과 벌이고 있는 기술 유출 갈등에 LG화학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역시 '기술을 빼앗기면 사업을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LG는 반도체 사업을 빼앗긴 이후부터 배터리 사업에 투자를 집중했고, 20년 넘게 적자를 지속한 끝에 전기차 시대의 도래와 함께 결실을 맺고 있다”며 “이번 SK와의 분쟁에서는 뼈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빈틈 없이 대응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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