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대한민국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고장난 대한민국

입력
2020.09.25 18:30
수정
2020.10.04 10:24
0 0

CCTV 먹통, 헬기 수리중, 군 멀뚱멀뚱
보고 받은 대통령 강경대응 지시 안해
김정은 사과했지만 그냥 넘길 일 아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연평도=뉴시스] 최진석 기자 =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된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25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해상에 해당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정박되어 있다. 2020.09.25. myjs@newsis.com


해양수산부 공무원 A(47)씨가 21일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 두 아이를 둔 1등 항해사인 그는 499톤급 무궁화 10호를 타고 공무 수행중이었다. 동료들이 그를 본 건 새벽 1시35분이 마지막이다. 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건 오전 11시30분이다. 10시간이 빈다. 그가 언제 바다에 빠졌는지 확인하는 게 수색 성공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1999년 취항한 무궁화 10호의 폐쇄회로(CC)TV는 노후화가 심해 당시 작동이 안 됐다. 실족인지 월북인지 판단할 증거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고장은 또 있었다. A씨의 친형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이튿날 현장으로 달려가 헬기로 수색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해경 수색 헬기는 고장으로 뜰 수 없었다. 긴급 수리 후 헬기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22일 오후 4시였다. 친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경 본청에 수색 헬기 2대가 웬말이냐”며 “국민 통신비 2만원 타령 말고 이런데다 돈 좀”이라고 적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군의 대응도 적절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에선 고장이다. 합참에 따르면 A씨는 22일 오후 3시30분 황해남도 등산곶 일대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발견됐다. 우리 국민이 북방한계선 일대에서 표류하다 북한 해역으로 들어가기까지 이틀 동안 군은 과연 경계 임무 등을 제대로 한 것인지 묻게 된다. 더구나 북한은 밤 9시40분쯤 바다에 떠 있는 A씨를 향해 총을 쏜 뒤 불까지 질렀다. 우리 군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대신 멀뚱멀뚱 구경만 하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가장 가까운 북방한계선으로 군함을 보내 A씨의 무사 귀환을 요구하며 무력 시위라도 벌여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고장이 심한 건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었다. 22일 밤 북한의 만행은 2시간 뒤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도 보고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청와대는 23일 새벽 1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문 대통령은 없었다. 대통령 대면 보고가 이뤄진 건 오전 8시30분이었다. 국가안보실장과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통일ㆍ국방부 장관까지 참석한 회의를 열 정도로 긴박했는데도 대통령에게 보고가 늦어진 건 이해가 어렵다.

군사합의서 관련 [판문점선언] 남북정상, 함께 맞잡은 평화의 약속 (판문점=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을 교환한 뒤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8.4.27 scoop@yna.co.kr/2018-04-27 19:12:33/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 국민이 총살됐다고 보고받은 뒤에도 문 대통령은 ‘사실 확인’을 강조했다. 당장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하고 군 비상 사태를 선언한 뒤 북한에 강력 항의하는 게 상식일 터인데 이러한 조치는 없었다. 이날 새로 임명한 군 장성들에게 삼정검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도 ‘특별 지시’는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또 다시 하루가 지난 24일 오전에야 NSC 소집을 지시했다. 그러나 낮 12시에 열린 NSC 회의는 문 대통령 대신 안보실장이 진행했다. 국민이 능욕을 당한 뒤 국가의 안보를 다루는 회의를 주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국사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남북은 2018년 4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할 것”이라며 “통 큰 합의에 동의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 ‘평화수역’에서 우리 국민이 참사를 당했는데도 문 대통령의 대처는 답답했다. 깊은 뜻이 있었다고 해도 국민 안전과 위로가 우선인 때였다. 비록 김 위원장이 25일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A씨가 살아 돌아온 것도, 이대로 끝낼 일도 아니다.

이번 사고 대응 과정에서 정부와 군, 청와대 등 곳곳이 고장이 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국민들은 고민하고 있다.

[기자사진] 박일근


박일근 뉴스1부문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메아리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