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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와 험프티 덤프티

입력
2020.09.27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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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 포스터

007 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 포스터


영국의 작가 이언 플레밍 원작의 007시리즈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한국에서 흥행에 꽤 성공한 영화다. 핵잠수함을 납치해 미국과 소련을 상대로 핵전쟁을 일으킨 뒤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야욕을 가진 악당과 맞서 싸우는 제임스 본드의 활약을 그린 내용이다. 1970년대 당시 초강대국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이는 설정부터 시작해서 테마곡의 제목 ‘Nobody does it better’ 즉 ‘누가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느껴지듯 이 영화는 줄거리의 배경과 주인공의 캐릭터 모두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다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Narcissos)' 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기애'적인 증상을 묘사하기 위해 정신분석적인 용어로 처음 명명하였다. 흔히 ‘나르시시즘’을 '자존감(self-esteem)'이 높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애가 강한 것은 오히려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나르시시즘과 높은 자존감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자아상(self-image)의 왜곡' 여부다. 나르시시스트들은 과장되고 부풀려진 외부의 시선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경배받기를 원한다.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그다지 확신이 없고, 내면의 공허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매우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에 대한 오만함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심리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가운데가 텅 빈 도넛으로 비유할 수 있다. 또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열등감을 지워버리려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공격하는 노력에 비해 자신에 대한 비난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심하게 결여되어 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대로 움직여야 하는 거울 속의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실제로는 투사된 가짜 이미지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소설 속의 험프티 덤프티는 높은 담벼락 위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으면서도 떨어지면 깨질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보다는 내적인 만족감으로 존재가치를 확인한다. 이들은 누군가의 질책을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자아성찰의 기회로 삼을 뿐이지 굳이 궁색하게 반박거리를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진심 어린 비판과 근거 없는 비방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에 기인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기본은 자기 외부에서 그 무엇도 기대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내부에서 발견하여 누리는 것이다’고 했다. 스파이조차 사랑한 제임스 본드나 오만하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험프티 덤프티가 한국 사회에 넘쳐나는 것은 행복지수가 낮은 자살 고위험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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