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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추석이 던진 질문

입력
2020.09.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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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추석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23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거리에 고향 방문 자제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23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거리에 고향 방문 자제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뉴시스


“접니다. 다들 이번엔 안 내려간다고 해서요.” “… ."

“저 혼자 가도 혹시나 (코로나19) 걸려 오면 안 될 것 같은데요.” “… ”

“일단 제 표는 구해놓을게요. 하루 이틀 상황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알았다.”

아버지와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추석은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아직도 고향에 갈지 말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이었던 올해 설까지는 간단했다. 교통편 정하고, 티켓 구하면 끝.

대학 입학과 함께 고향을 떠난 이후 25년 동안 해외 출장을 갔던 한 번 빼고는 명절엔 어김없이 고향집을 갔다. 사실상 ‘100% 출석’의 8할은 아버지의 의지 때문이었다. 명절 때면 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안부 묻고 차례 지내고 성묘 가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셨다.

명절에 해외 여행 가는 가족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버지에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출장 갔던 그 추석 때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시댁(내 고향집)을 갔다. “제가 출장을 가니 안 내려가면 안될까요”라는 질문에 “OO 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오면 될 것 아니냐”는 한 문장으로 상황 정리.

그런 아버지도 이번 추석을 앞두고 예전처럼 단호하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은 가족과 거리 두기를 하자”는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자신을 핑계 삼아서라도 추석에 가족이 모이지 말자고 독려하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부모님은 자신들이 챙기겠다며 오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회사가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전국 지표조사를 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30.3%), 응답자의 86%가 ‘비대면 명절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13%, ‘모름·무응답’은 1%였다. 특히 아버지가 속한 70세 이상도 10명 중 8명 이상(83%)이 굳이 가족을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아버지로부터 “오지 말라”는 말은 없다. 분명 “내려갈게요”라는 대답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뜻밖에도 코로나19 때문에 추석이란 무엇인지, 가족은 또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특히 몇 시간 기차 타는 것을 지겨워하던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러 안 가느냐”고 먼저 물어오는 것이 신기했다. “웬일이냐”고 핀잔을 줬더니 “보고 싶어서”라며 멋쩍어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영상 통화를 해도 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명절에 왜 가족이 모이는지 말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비록 늘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 보고 손을 어루만지고 포옹을 하면서 어른들은 얼마나 건강하고,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가끔 그 짧은 만남을 떠올리며 작게나마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여기까지로 해야 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몇 시간 운전해서 고향집에 가야 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코로나19의 무서운 전파력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전화를 드려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해야겠다. 아버지는 실망하시겠지만.

박상준 이슈365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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