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 발표 시점을 늦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 국민이 북한에 피살됐다는 사실을 서욱 국방부 장관이 인지한 시점부터 24일 오전 공식 발표까지 걸린 시간은 약 36시간으로 파악된다. 그 사이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화상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직후 북한의 만행을 공개하는 앞 뒤가 안맞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표 시점을 늦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24일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군 당국이 21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A(47)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것을 인지한 시점은 22일 오후 10시11분쯤이다. 이어 밤 11시~12시 사이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됐고 청와대에도 곧바로 보고됐다. 약 한 시간 뒤인 23일 새벽 1시쯤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가 개최됐다는 것은 최소한 이 시점에서 관계 당국 지도부가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모두 인지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23일 하룻 동안 정부가 A씨 피살을 쉬쉬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1시쯤 국방부 기자단에 문자 공지를 보내 "어업지도원 1명이 서해 해상에서 실종됐다"고 밝혔다. A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첩보"가 있다고만 언급했을 뿐 피살된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이날 내내 군 당국은 A씨 생사 여부와 관련해 "단정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서 장관에게 보고된 22일 밤 11시부터 국방부가 피살 사건 전말을 발표한 24일 오전 11시까지 36시간 동안 발표를 미룬 것이다.
국방부는 "관련 첩보들을 종합하고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청와대 발표대로 23일 문 대통령이 대면 보고까지 받았다면 이번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분석은 그 이전에 마무리됐을 것으로 여겨진다. 상황 분석에 시간이 걸렸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과 맞물린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국제 사회에 종전선언 필요성을 거듭 제기한 문 대통령의 화상 연설은 23일 새벽 1시 26분에 이뤄졌다. 통상적인 절차대로라면 23일 오전에라도 국방부가 A씨 피살 사건을 발표했어야 하지만 문 대통령의 종전 선언 제안 직후 '북한의 만행'을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유엔총회 연설이 갖는 의미를 고려해 A씨 피살 사건은 24일 오후쯤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그 사이 관련 보도들이 나오면서 24일 오전으로 앞당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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