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간 합의로 집행유예 나왔지만 2심에선 실형
"피해자에 심리적 압박…내심은 처벌 원해"
"피해자 의사 반영 안된 처불불원서 효력 없다"
성추행을 당한 미성년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인 부친이 가해자와 합의한 뒤 처벌불원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하더라도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모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강씨는 2015년 겨울 새벽 안산시 단원구 피해자의 집에서 피해자의 부친이 신문배달로 집을 비운 사이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강씨는 피해자 집에서 추행한 후 자신의 집으로 억지로 끌고가 다시 추행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강씨의 처벌을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의 부친은 2018년 10월 강씨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은 뒤 피해자를 대리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재판 말미에 피해자도 자신의 변호사에 문자메시지로 처벌불원 의사를 전달했다.
1심은 처벌불원서를 특별양형인자로 반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3세 미만인 피해자를 강제추행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강씨가 범행을 모두 인정, 반성하고 피해자와 합의해 피해자가 강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처벌불원이 진실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징역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법원이 직접 피해자를 면담한 결과 피해자의 용서 의사표시는 사건의 조기 종결을 바라는 주변의 압력을 의식해 이루어진 것으로, 내심은 피고인의 처벌을 바라는 의사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년 가까이 진행된 피해자에 대한 의사 확인 절차를 통해 드러난 피해자의 내심의 의사, 피고인이 피해자의 부친을 통해 미성년자인 피해자에게 무리하게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 피해자가 느낀 심리적 부담 등에 비춰볼 때 처벌불원서에 기재된 피해자의 의사가 진실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해자가 나이 어린 미성년자인 경우 그 법정대리인이 피고인 등에 대해 밝힌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에 피해자 본인의 의사가 포함돼 있는지는 사건의 유형, 합의 전후의 정황, 피해자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항소심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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