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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실 거면 곱게 마셔라” 도끼로 술통을 부순 여자들

입력
2020.09.26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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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술 마신 그 입을 우리의 입에 대지 마라” 반살룬 운동 슬로건 피켓을 들고 있는 여성기독금주조합 회원들. 위키미디어

“술 마신 그 입을 우리의 입에 대지 마라” 반살룬 운동 슬로건 피켓을 들고 있는 여성기독금주조합 회원들. 위키미디어


“술 마신 그 입을 우리 입에 대지 마라.”

이는 1800년대 후반, 미국의 여성기독금주조합과 반설룬동맹에서 내건 반설룬 운동의 슬로건이다. 이들은 가정 파탄의 주범으로 ‘설룬(술집)’을 지목했다. 발음이 비슷한 탓에 설룬(saloon)은 언뜻 프랑스의 살롱(salon)을 연상시키지만, 둘은 성격이 판이한 술집이었다.

반설룬 운동은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미국의 초기 이민자들은 주로 동부에 정착했다. 동부에 정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막 개발되기 시작한 중서부로 모여들었다. 때마침 광산 개발과 철도 건설 붐이 일자, 일자리가 차고도 넘쳤다.

이들이 이동할 때는 술집이 따라붙었는데, 천막 안에 술통 2개를 양쪽에 놓고 그 위에 널빤지를 올려 술을 팔았다. 이른바 초기의 설룬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요 길모퉁이 곳곳에 목로주점 형태의 설룬이 세워졌다.

설룬에서는 증류주인 진이나 위스키를 주로 팔았다. 값이 싸면서도 알코올 도수는 높았으니, 그야말로 “한 푼이면 취하고 두 푼이면 만취”할 수 있었다. 남자들은 날마다 설룬을 들락거렸다. 점차 설룬은 전국에 퍼졌고, 당연하게도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도 하나둘 늘었다. 남자들은 임금을 술값으로 탕진했으며, 만취해 아내와 아이에게 손찌검도 했다. 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 반설룬 운동에 나선 것이다.


캐리 네이션. 그는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도끼를 들고 반살룬운동을 전개했다. 미국디지털공공도서관

캐리 네이션. 그는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도끼를 들고 반살룬운동을 전개했다. 미국디지털공공도서관


기독교 근본주의와 페미니즘. 언뜻 모순돼 보이는 이 두 성향을 지닌 캐리 네이션이라는 인물이 반설룬 운동을 이끌었다. 그녀는 회원들과 함께 한 손엔 성경을, 한 손엔 도끼를 들고 곳곳에 있는 설룬을 찾아다니며 술통을 내리찍고 기물을 부수는 등 급진 운동을 전개했다.

반설룬 운동의 초기 활동가들은 ‘주폭’의 직접 피해자인 중서부 기혼여성들이었다. 이들의 모임에서 이 운동이 시작됐지만, 곧 여러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만취한 노동자들 탓에 잇따른 근무 태만과 산업재해에 위기를 느낀 자본가들, 술집을 운영하는 아일랜드계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과 맥주 산업을 장악한 독일계 이민자에게 반감을 가진 보수주의자들, KKK단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 애초에 음주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가세했다. 그러자 이 운동은 금주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됐다.


말 타고 도끼를 휘두르며 술통을 깨부수는 반설룬운동가의 모습을 십자군에 비유한 삽화(1874년). 미국의회도서관

말 타고 도끼를 휘두르며 술통을 깨부수는 반설룬운동가의 모습을 십자군에 비유한 삽화(1874년). 미국의회도서관


금주운동이 미국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 세계 곳곳에서 금주 피켓이 사람들 손에 들렸다.

금주운동이 영국에서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음주가 사회문제로 처음 떠오른 곳이 바로 영국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절,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졌다. 임금이 적은 탓에 노동자들에게는 싼값에 취기가 빨리 오르는 증류주, 진이 제격이었다. 이들은 오랜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독한 알코올로 달래야 했다. 이는 열풍처럼 퍼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바로 18세기 영국을 휩쓴 진 광풍(Gin Craze)이다.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맥주 거리와 진 거리’(1751). 영국의 진 광풍을 그린 대표 작품으로 맥주 거리는 차분한 반면 진 거리에는 모두가 취해서 널부러져 있다. 위키미디어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맥주 거리와 진 거리’(1751). 영국의 진 광풍을 그린 대표 작품으로 맥주 거리는 차분한 반면 진 거리에는 모두가 취해서 널부러져 있다. 위키미디어


러시아와 그 뒤를 이은 소련, 북유럽 국가 대부분과 인도에서도 금주운동이 일어났다. 심지어 영국이 금주를 목적으로 범법자들을 이주시킨 식민지가 오스트레일리아였으니,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들 나라와 똑같은 문제가 반세기 후에 미국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초기 금주운동은 진보적이었다. 반설룬 운동 역시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이들 덕분에 설룬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를 계기로 여성의 참정권도 실현됐다.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활동한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가들 역시 동료들에게 금주하도록 계몽했다고 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선 참정권이 필수인데, 부르주아들이 술에 절어 있는 노동자를 비이성적이라고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소련에서도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금주운동이 전개됐고, 인도에서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실천 방법으로 금주를 강조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금주운동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폭음과 ‘주폭’을 줄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재미있게도 당시 금주운동의 목표는 ‘술 완전 금지’가 아니었다. 지나친 음주와 이에 따른 폭력을 경계하려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해관계가 얽힌 세력들이 금주운동 판에 들어오면서 운동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들은 아예 술을 금지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의 입김이 강한 메인 주를 비롯한 몇몇 주에서는 미국 연방 금주법보다 50년이나 앞서 주 차원의 금주법을 시행했다. 곧바로 폐지되거나 실효성은 적었지만 말이다.

세계 곳곳에 금주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금주법 제정을 가속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먼로 독트린으로 유럽에 불간섭주의를 표방하던 미국은 독일의 잠수함 공격으로 자국민이 사망하자 뒤늦게 연합군으로 참전했다.

무릇 전쟁에는 식량 보급이 중요한 법. 미국은 곡물 보급량을 유지하기 위해 증류주 제조를 금지했다. 비슷한 이유로 다른 나라에서도 주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런 분위기가 고조되자, 내친 김에 만취와 주폭을 경계하던 사람들, 금주에 찬성하는 여러 단체들과 정치인들의 지지 속에 수정헌법 18조로 불리는 금주법이 통과됐다. 이를 두고 ‘고귀한 실험’이라 치켜세웠다. 곧이어 여성들은 수정헌법 19조를 이끌어내며 여성참정권을 획득했다.

금주법 초안에는 “만취를 유발하는” 음료를 금지한다고 규정됐다. 그런데 그런 음료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금주법 지지자들조차 증류주에 비해 알코올 함량이 낮은 맥주와 와인은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에 하원의원 앤드루 볼스테드가 알코올을 0.5% 이상 함유한 음료라고 명시한 법안을 상정했다.

수정헌법 18조에 일명 ‘볼스테드법’이 더해진 금주법은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1920년에 발효돼 1933년까지 지속됐다. 사실 이는 독일계 이민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미국 맥주 산업은 독일계 이민자들이 장악했기에, 이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할까 우려한 결과라고 한다.


금주법이 발효되자 단속반들이 술통의 술을 쏟아버리는 장면과 몰수된 밀주 술통. 미국 오렌지카운티 아카이브 제공

금주법이 발효되자 단속반들이 술통의 술을 쏟아버리는 장면과 몰수된 밀주 술통. 미국 오렌지카운티 아카이브 제공


아무튼, 금주법이 시행된 1920년대 미국은 ‘황금시대’라고 부를 만큼 대호황기였다. 1차 세계대전은 미국에게 풍요를 안겨주었다. 전쟁 중에는 전쟁 물자를, 전쟁 후에는 유럽에 생필품을 팔아 부유해진 미국은 연일 주가가 최고가를 경신했다. 동시에 전쟁 뒤의 절망감과 허무감이 퍼지기도 했으니, 이 시기에 세계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을 일컬어 헤밍웨이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표현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한국에서 금주법이 발효된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적어도 필자는 몰래 술을 담그고 있을 것이다. 금주법 당시, 미국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 있는데, 바로 ‘위대한 개츠비’다.

개츠비는 금주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홈파티를 벌였다. 게스트들은 위스키, 와인, 칵테일을 마시면서 재즈의 선율에 몸을 맡겼다. 당시 부자들은 유럽, 캐나다, 멕시코 등지에서 밀수한 고급 술을 사들였고, 주로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불법으로 운영하던 스피크이지바(간판이 없는 비밀 술집)를 찾아다녔다. 영국에서 개발한 국경을 넘나들며 술을 파는 호화 여객선 노선도 있었다 하니, 그야말로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였다.

한편 가난한 사람들은 질 낮은 밀주를 마셨다. 심각한 것은 공업용 알코올이 들어 있는 부동액, 향수, 페인트에서 추출한 술을 마시기까지 했는데 이 탓에 사망한 사람이 무려 3만5,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밀주는 주로 갱단이 만들어 유통했다. 어찌나 술이 많이 팔렸던지 한낱 동네 조직에 불과하던 마피아 두목 알카포네는 금주법 기간 동안 부패한 경찰, 관리, 정치인들의 비호 아래 ‘밤의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세를 키웠다. 개츠비가 갑부가 된 배경에도 갱단과 연결된 밀주 사업이 있었다.

법망 바깥에 놓인 밀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대부분 질이 나빠 맛과 냄새를 가려야 했다. 달고 향이 강한 토닉워터나 콜라, 무알코올 진저비어를 섞어 마셔야 했고,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칵테일을 제조해 마셨다.

불법 술집은 계속 번창했다. 술집은 안 보이는 곳을 찾아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갔다. 이곳에서 일하던 흑인들의 음악, 재즈는 스피크이지바와 함께 금주법 시대의 상징이 됐다.

일각에선 금주법의 허점을 이용해 술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의약용 알코올과 미사용 와인, 가정에서 한시적으로 담근 소량의 와인은 금주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의사들은 알코올을 처방했고, 약사들은 알코올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 개츠비가 약국 사업을 한 이유이다.


와인을 만드는 법을 대놓고 가르쳐주는 경고문이 붙은 그레이프 브릭(Grape Brick). 위키피디아

와인을 만드는 법을 대놓고 가르쳐주는 경고문이 붙은 그레이프 브릭(Grape Brick). 위키피디아


눈 가리고 아웅 격인 방법도 판을 쳤다. 와이너리 주인들은 금주법이 실시된 뒤로 포도주스를 농축 건조해 ‘그레이프 브릭(Grape Brick)’을 만들었다. 포장지 위엔 경고문을 붙였으니 “물 1갤런에 그레이프 브릭을 녹인 뒤 20일간 장 속에 넣어두지 마시오. 그러면 포도주가 될 수 있음”. 대놓고 술 제조법을 알려준 셈이다.

엄연히 법으로 술을 금했지만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술을 마셨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경제호황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 빈부격차는 심화됐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은 대공황에 빠져들었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주세라도 다시 거둬야 할 판이었다. 결국 금주법을 폐기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마침내 루스벨트 대통령은 14년 만에 수정헌법 21조를 비준해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폐지되었으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수정헌법 18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금주법 폐지로 맥주가 정식으로 출시되자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이 1933년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금주법 폐지로 맥주가 정식으로 출시되자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이 1933년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금주법 시대의 실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과장되거나 극적인 이야기도 많고 통계도 마냥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주하지 못하는 필자가 금주법의 영향 가운데 긍정하는 부분이 있다. 남성이 전유한 폭력적 음주 문화에 일침을 가했고, 여성 참정권을 쟁취한 계기로 작용했으며,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던 술집을 여성들도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 시대에는 남편이 아내의 음주 여부를 검사하려고 키스할 것을 요구했단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술 마신 우리 입에 그 입을 대지 마라.” 술 가지고 하는 ‘고귀한 실험’은 이제 그만!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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