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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단지에 '반려견 갈등' 없다! 주민이 함께 이름표 만드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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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단지에 '반려견 갈등' 없다!주민이 함께 이름표 만드는 사연

입력
2020.10.10 06:5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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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 꿈꾸는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
동네체육관서 연 워크숍 '별나개' 눈길
트레이너 초빙해 문제 행동 교정도
"갈등 조정하며 성숙한 문화 형성될 것"

지난 8월15일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 단지 내 동네체육관에서 열린 별나개(위스테이 별내에 나쁜 개는 없다) 행사에 참가한 입주민들이 행사를 마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태무

지난 8월15일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 단지 내 동네체육관에서 열린 별나개(위스테이 별내에 나쁜 개는 없다) 행사에 참가한 입주민들이 행사를 마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이태무

“안녕하세요. 100x동에 사는 6살 몰티즈 ‘귀요미’ 가족입니다. 앞으로 단지 안에서 산책할 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도 물으면 좋겠습니다.”

“네 좋아요. 귀요미는 이름처럼 귀엽게 생겼네요."

"저희 '두리'는 요크셔테리어인데요.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반려견들 중에 최고령견일 것 같네요. 16살입니다.”

“와~ 나이에 비해 정말 건강하네요. 비결 좀 알려주세요.”


코로나19가 수도권에 본격 확산하기 직전이던 지난 8월 15일 낮.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We Stay) 별내 아파트 단지 내 동네체육관에 반려견을 키우는 11세대 주민 30여명이 모였다. 주민과 반려견 모두 행복한 단지를 만들자며 열린 주민 워크숍 행사명은 ‘별나개’(위스테이 별내에 나쁜 개는 없다). 모임 초반 서먹함에 각자 반려견 소개와 사료, 간식 등의 정보들을 주고받던 이들은 말문이 트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본인 반려견이 더 사고뭉치라며 웃음 섞인 ‘앞담화’를 마구 쏟아냈다. 단지 내 반려견 가정 간 친목 도모와 초빙 훈련사에 듣는 반려견 문제행동 교정수업 등을 포함해 별나개는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느슨한 공동체를 꿈꾸다

위스테이 별내에서 진행되는 단지 내 동호회 중 하나인 목공교실이 열리는 모습. 사회적기업 더함

위스테이 별내에서 진행되는 단지 내 동호회 중 하나인 목공교실이 열리는 모습. 사회적기업 더함

위스테이는 국토교통부 시범사업으로 선보이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주로 단독ㆍ다가구 주택들이 많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마을공동체사업을 아파트 단지로 옮겨놓은 모습이다. 이곳 입주민들은 임차인이면서 본인들이 만든 협동조합을 통해 아파트 단지 내 모든 일을 결정하는 사실상의 소유주 역할도 한다. 올해 6월말 입주를 시작한 위스테이 별내의 경우 입주 전 9개월 동안 576명의 입주민들이 46차례 모여 살고픈 마을을 직접 구상했다. 입주민들은 도서관과 체육관, 어린이집 등 공용시설의 인테리어부터 단지 내 동호회 진행 프로그램 구성까지 직접 참여하며, ‘느슨한 공동체’ 로의 준비를 마쳤다.

반려인과 비반려인 가정간 갈등 조정은 층간소음 조율, 장애인 접근권 향상 등과 함께 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입주민들 고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단지 내 발생 가능한 반려견 관련 문제를 개인간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 문제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했다. 단지 내 반려견 관련 문제를 반려인 가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일반적 인식과 접근방식에 차이가 있다. 그렇게 단지 전체 7개동 491세대 중 사전신청을 통해 반려견을 키우는 11세대가 우선 모였다.


1차 별나개 행사 참가 가족이 펫티켓 실천을 약속하는 푯말을 들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1차 별나개 행사 참가 가족이 펫티켓 실천을 약속하는 푯말을 들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입주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나온 여러 안건 가운데 입주민들이 반려견 관련 갈등 중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분변 미수거와 단지 중앙 잔디광장 출입이었다. 이에 반려인 가족들이 내놓은 해답은 바로 ‘반려견 명찰’이다. 반려견의 단지 내 실외배변과 잔디광장 출입을 무조건 금지하고 감시해도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반려견마다 이름이 크게 적힌 단지 공용 명찰을 달면 공용공간에서 반려인들의 행동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비반려인들도 우연히 만난 반려견의 기본정보를 알 수 있어 좀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포함됐다. 위스테이 별내 공모사업 주관사인 사회적기업 ‘더함’의 진지웅 매니저는 “단지 내 반려견을 키우는 세대는 모두 파악돼 있다”며 “현재 단지 내 재봉틀 동호회에서 반려견들의 이름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국내 반려문화 축소판


1차 별나개 행사에 참가한 반려인 입주민들이 서로의 반려견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1차 별나개 행사에 참가한 반려인 입주민들이 서로의 반려견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이날 별나개 행사에 나온 반려인 가정의 모습은 국내 전체 반려인 가정의 축소판이었다. 4인 가구와 1인 가구, 아이 없는 맞벌이부부와 다견 가정, 유기견을 입양한 집과 펫숍이나 지인을 통해 반려견을 분양받은 가정 등 반려견을 키우는 환경은 각각이었다. 반려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만큼이나 늘어나는 고민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6살 푸들 ‘몰리’의 보호자인 함모(50)씨 가족은 “태어난 1년간 학대 당하다 구조된 몰리를 5년째 키우고 있지만, 아픈 기억 때문인지 낯선 남자에게 입질이 있다”는 고충을 밝혔다. 생후 1년4개월 푸들 ‘솜솜’의 보호자인 이모(35)씨도 직장생활로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우면 분리불안과 짖음이 문제행동으로 나타난다”며 걱정스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선지 이들은 별나개 행사에견 훈련사를 초빙해 가진 문제행동 교정시간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1시간 가량 짧게 진행된 이날 문제행동 교정시간 동안 각 반려견들의 문제점을 파악한 김도현 훈련사는 일부 반려견들의 문제행동이 교정될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하기도 했다. 집과 훈련장에서 유기견만 10마리 넘게 키우면서 입주민이기도 한 김 훈련사는 “단지에 이런 자리가 있어 흔쾌히 교육을 약속했다”며 “간단한 펫티켓 교육만 잘 이뤄져도 입주민과 반려견이 모두 행복한 단지가 분명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펫티켓이 없는 일부 반려인들로 인해 전체가 비난을 받을 때가 많다”며 “반려견 산책시 배변봉투만 잘 챙겨도 많은 비반려인들의 비난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비반려인이 산책 중인 반려견에게 무작정 다가가는 행동 역시 무례한 일”이라며 “서로 기본적인 것만 지켜도 갈등 요소가 매우 줄어든다”고 했다.

1차 별나개에 참가한 한 입주민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가린 채, 반려견 갈등이 싫다는 푯말을 들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1차 별나개에 참가한 한 입주민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가린 채, 반려견 갈등이 싫다는 푯말을 들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별나개는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이날 1차 별나개에서 단지 내 반려인들이 유대를 쌓고, 반려견과 생활하며 지켜야할 공공예절인 펫티켓 실천을 고민한 것과 달리, 2차 별나개에는 단지 내 비반려인들이 모였다. 1차 별나개 직후 수도권에 확산한 코로나19로 연기되다 지난 7일 단지 내 동네책방에서 열린 2차 별나개에서는 비반려인이 반려인의 펫티켓 미준수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방법 등을 모색했다. 비반려인들이 반려인들에게 바라는 공공장소 목줄 착용과 분뇨처리 등의 요구를 공유하고, 이를 단지 내 갈등관리위원회 차원에서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반려인과 비반려인간 갈등에서 반려견에게 무조건 책임을 넘기기보다는 본인들도 모르게 반려인과 반려견들에게 아픔과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언행도 되돌아봤다. 산책 중인 반려견을 마주쳤을때 하지 말아야 할 언행 등을 퀴즈로 알아보는 코너는 참석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한 참석자는 "비반려인들이 유의할 내용들을 단지 내 온라인카페를 통해 모든 이웃들과 공유할 계획"이라며 "17일 열리는 3차 별나개에서 반려인들과 비반려인들이 서로 만나 상호 존중을 합의하고, 비반려인들은 반려견과 친해져보는 시간도 갖는다는데 꼭 참석하겠다"고 했지다.


지난 7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 단지 내 동네책방에서 열린 제2차 별나개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반려견 상식 퀴즈를 풀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지난 7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위스테이 별내 단지 내 동네책방에서 열린 제2차 별나개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반려견 상식 퀴즈를 풀고 있다. 사회적기업 더함


입주민들이 논의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모습은 반려견 관련 문제뿐만 아니라 단지 내 다른 문제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최근 층간소음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를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먼저 아랫집 등에 직접 인사를 돌며 미리 양해를 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단지 내 층간소음 측정시스템을 만드는 등의 작업을 논의 중이다. 진 매니저는 “단지 내 반려견 갈등 해결의 첫 방법으로 반려견 명찰을 도출해낸 것처럼, 층간 소음 갈등도 슬기롭게 대처할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며 "합의한 내용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냐도 중요하겠지만,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단지 문화가 형성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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