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정책위에 케렌시아 설치 지시한 이낙연
총리 때부터 고도원 시인과 마음 치유 중요성 논의
정신 건강을 사회적 재난으로 간주하고 이를 치유할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 어딘가 '케렌시아'를 두는 방안을 연구하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23일 최고위원회의 발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발생한 '코로나 블루' 현상을 막을 책이 시급하다며 '케렌시아' 메시지를 던졌다.
케렌시아는 스페인 투우 경기에서 나온 말이다. 투우장의 소가 일전을 앞두고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한 휴식 공간이다. 투우사는 케렌시아에 있는 소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나름의 룰도 있다. 최근에는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식처를 찾는 소비 행태를 가리키는 의미로 확대됐다. 자연에 기반을 두고 느긋한 삶을 사는 '슬로우 시티'와 관련이 깊다.
이날 이 대표의 발언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취업난과 실직, 사회적 활동 제한으로 느끼는 고립감과 불안감 등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하느라 그 동안 놓친 '마음의 방역' 체계까지 갖춰 'K-방역'을 완성하겠다는 취지다.
지친 국민이 마음 놓고 쉬고,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당 정책위원회에는 정부와 여당,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케렌시아를 만들 수 있는지 검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낙연에게 '케렌시아' 알려준 고도원 시인
평소 정책의 세부사항까지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해 '디테일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대표가 케렌시아를 언급한 건 시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국립산림치유원 원장의 역할이 컸다.
고 원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4ㆍ15 총선이 끝난 뒤 이 대표와 종종 만나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힐링센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 대표의 오늘 발언은 그 동안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부분을 반영한 것 같다"고 밝혔다.
고 원장은 충북 충주에 있는 치유센터인 '깊은산속옹달샘'을 15년 넘게 운영하며 정신건강을 연구해 온 '힐링' 전문가다. 이 대표와는 1980년대 말 인연을 맺었다. 고 원장은 당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였고 이 대표는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평민당을 함께 취재했다.
이후 한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두 사람은 2019년 3월에 재회하게 된다. 고 원장이 2018년 10월 국립산림치유원 원장을 맡게 되자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연락을 했고, 두 사람은 5개월 뒤 만남을 가졌다.
이 대표가 케렌시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때부터다. 고 원장은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 대표에게 '우리 사회의 케렌시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이 대표도 이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게 고 원장의 설명이다.
이때만 해도 필요성에 공감한 정도였지만, 이 대표는 4ㆍ15 총선을 거치면서 케렌시아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고 원장은 전했다. 이 대표는 3월 민주당 국난극복위원장을 맡으면서 감염병의 문제점과 대책을 다룬 많은 보고를 받았고, 총선 이후에는 고 원장과 만나 코로나 블루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고 원장은 "이 대표가 총리 때만 해도 치유센터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기구라는 일반론에 동의하는 정도였는데 총선 전후로 몇 차례 찾아왔다"며 "특히 국난극복위원장 때 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방역을 신경 못 쓰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고 말했다.
당 국난극복위원장 맡으며 케렌시아 정책 구상
이 대표는 대표 취임 전부터 케렌시아에 대한 정책 구상을 그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 취임 전인 국난극복위원장 시절인 6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 블루 극복을 위한 사회적 힐링의 필요성' 세미나에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
보통 당 지도부들은 국회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만 한 뒤 퇴장하지만, 이날 이 대표는 세미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케렌시아 개념을 알게 해준 고 원장에게 감사하다"며 고 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 원장은 치유센터에 대해 "코로나19로 생긴 짜증과 울화,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하지 않으면 자살이나 범죄 등 극단적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케렌시아 같은 치유센터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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