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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입력
2020.09.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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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9년의 이상 온난 기후로 그린란드의 얼음이 기록적으로 녹아 내렸는데 그 양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1.25m 이상의 물로 덮을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사진은 2019년 8월 16일 그린란드 쿨루스크 인근에 떠다니는 빙하의 모습. AP 뉴시스

지난 2019년의 이상 온난 기후로 그린란드의 얼음이 기록적으로 녹아 내렸는데 그 양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1.25m 이상의 물로 덮을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사진은 2019년 8월 16일 그린란드 쿨루스크 인근에 떠다니는 빙하의 모습. AP 뉴시스


늦은 시각 집에 들어갈 때면 주택가 이면도로 한 구석에 쌓인 엄청난 쓰레기 더미를 지나친다. 이틀, 길어야 사흘간 분량인데도 매번 쓰레기는 좁은 네 갈래 길 한 귀퉁이를 가득 뒤덮는다. 올해 들어 유난히 늘어난 느낌인데 실제로 코로나19 여파로 택배량과 배달 소비가 늘면서 포장재ㆍ일회용 쓰레기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의성 ‘쓰레기 산’에 비하면 작은 언덕 수준이지만 매번 동네에 쌓이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폐기물 처리장에 처음 취재 갔을 때 느꼈던 충격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치열하게 지구를 더럽히고 있고, 또 얼마나 교묘히 이를 숨기고 있는가. 아무리 눈앞에서 숨겨도 지구를 쉼 없이 괴롭힌 잘못은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얼마 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테넷’에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악당이 환경 문제를 거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극악무도한 놈이 할 소리냐 싶긴 했지만, 훼손된 지구를 물려받은 미래 세대가 환경을 오염시킨 지금 세대를 원망한다는 설정에 뜨끔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한창 친구들과 뛰놀고 다닐 나이에 집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문제를 들여다 볼 때마다 출구 없는 막다른 길에 들어선 듯하다. 적절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서다. 경제 성장과 소비 욕구에 함몰돼 결국 종말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스치기도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덜 쓰고 상품 비닐 포장을 줄이는 것으론 이 거대한 엔트로피(무질서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 없다.

지구는 사람 몸과 다르지 않다. 한 곳에 큰 병이 나면 다른 곳에도 탈이 나기 마련이다. 지난 여름 한반도에 쏟아진 폭우와 미국 서부를 집어삼킨 대형 화제의 원인이 같다는 전문가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중병이 든 몸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요즘엔 지구가 그 임계치에 이미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도 결국 인류가 지구 환경을 훼손한 결과다. 매년 ‘역대’를 경신하는 폭염, 폭우와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음엔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 모른다. 팬데믹과 기상이변이 지구가 앓고 있는 중병의 여러 증상 중 일부라면 환경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거나 후순위로 미룰 순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경제 성장을 이유로 환경을 오염시킨 만큼 경제 주체들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서 회복을 위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생산자들이 바뀌고 정부가 변화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저공해차 보급목표제 시행에, 묶음상품 과대 포장 금지 조치에 기업을 옥죈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건 세계 일류를 운운하는 기업들이 보일 품격이 아니다. 미세먼지 문제는 오로지 중국 책임일 뿐 우리 잘못은 없다는 무책임함이 선진국 시민의 민낯이 돼선 안 된다.

‘테넷’을 보며 100년 후의 미래 세대가 시간을 거슬러 와서 지구를 망친 책임을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생각했다. 경제 성장이 최우선이어서, 먹고살기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영화는 허구지만, 병든 지구는 실재다. 미래 세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했다’며 몇 가지 변명거리는 만들어 놔야 할 텐데 환경 이슈가 우리 사회에선 종종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기자사진] 고경석

[기자사진] 고경석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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